요한복음 1장 30절 묵상, 나보다 먼저 계신 그리스도

 

나보다 먼저 계신 그리스도

요한복음 1장 30절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증언하면서 고백한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고백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사역, 그리고 그분의 영원성과 우월성을 선포하는 신학적인 선언입니다.  짧지만 강력한 요한 고백은 요한복음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신학적 우제가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한 절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그리고 그분 앞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과 선재성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이 말씀에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신성과 선재성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내 뒤에 오시는 이'라는 표현은 시간적으로는 예수님이 요한보다 뒤에 공생애를 시작하셨음을 나타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세례 요한보다 약 6개월 후에 태어나셨고,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시간적 순서를 언급하며 동시에 "그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사용된 헬라어 '프로토스'(πρώτος)는 단순히 시간상의 선후가 아니라, 본질적 우월성과 탁월함을 포함한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보다 먼저 존재하셨을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요한보다 뛰어나신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곧 예수님의 선재성(preexistence)을 나타내며, 요한복음 1장 1절의 말씀과 연결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셨고,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곧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이와 같은 고백은 단지 사변적인 신학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단순한 선지자나 도덕 교사, 또는 탁월한 영적 인도자가 아니라,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성육신하신 말씀이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를 깨달았기에, "그분은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흔들릴 때는 대부분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흐려질 때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필요를 채워주는 분으로만 여길 때, 신앙은 자기 중심적인 유익 추구로 전락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보다 먼저 계시고, 나보다 앞서 계시며, 나보다 높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는 그분 앞에 순복하며 진정한 제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종의 자세로 드러나는 복음의 겸손

세례 요한은 수많은 무리들 앞에서 예수님을 가리켜 "나보다 앞선 분"이라고 선언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은 그분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치 못할 자라고 고백했습니다(요 1:27). 당시 문화에서 신발끈을 푸는 일은 종들 중에서도 가장 낮은 종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요한은 스스로를 그 수준에도 못 미친다고 여긴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 복음을 대하는 태도의 본질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복음은 인간을 높이는 소식이 아닙니다.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 앞에 철저히 낮아지게 만들며, 인간의 죄성과 무력함을 인정하게 합니다. 세례 요한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았고, 당시 종교 지도자들도 그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높이지 않았고, 오직 예수님을 높였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조차 인간 중심의 신앙이 만연해 있습니다. 예배의 초점이 하나님보다 사람의 기분과 만족으로 기울고, 말씀보다는 경험과 감정에 치우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가 낮아지고 예수님이 높아지는 길이며, 우리의 존재가 그분 안에서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는 여정입니다. 세례 요한의 고백처럼, 우리의 사역, 직분, 은사조차도 오직 예수님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분 앞에서 드러나는 겸손이야말로 진정한 영적 권위입니다.

우리도 때론 요한처럼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고, 어떤 자리에 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는 자신을 드러내는 자리가 아니라, 예수님을 증언하는 자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분이 나보다 먼저 계시고, 먼저 일하시며, 궁극적으로 모든 영광을 받으셔야 할 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주권

요한복음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말씀'(로고스)으로 소개합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계시하시는 방법이며, 동시에 구속사를 이끄시는 주체입니다. 예수님은 '나보다 먼저 계신' 분일 뿐 아니라, 나의 삶과 역사를 주권적으로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세례 요한의 고백은 자기 인생의 주인이 예수님이심을 인정한 고백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주인되시는 역사 속에 자기를 위치시켰고, 자신의 역할은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요한복음 1장 30절은 이 같은 자기 인식과 신학적 확신을 담고 있는 절정의 선언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며 이 같은 고백을 붙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보다 먼저 계셨다는 말은, 내 인생의 모든 순간 속에 그분이 이미 계셨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가는 길, 내가 만나는 문제, 내가 감당해야 할 사역 앞에 이미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놀라지 않으시고, 당황하지 않으시며, 모든 것을 주권적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때로 우리는 미래가 불안하고,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고백을 기억하십시오. "그가 나보다 앞섰다"는 이 말씀은 단순한 순서가 아니라, 위로의 복음입니다. 내 앞에, 내 상황보다 앞서 일하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안심할 수 있고, 순종할 수 있으며, 묵묵히 믿음으로 걸어갈 수 있습니다.

삶의 고비마다 우리는 예수님의 선재성과 주권을 붙들어야 합니다. 오늘을 사는 데 필요한 가장 큰 확신은, 내 앞에 계신 그분이 나를 사랑하시며,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진리는 그 어떤 불확실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반석입니다.

결론

요한복음 1장 30절은 짧은 한 절이지만, 예수님의 본질과 복음의 핵심을 품고 있는 고백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나보다 앞선 분'으로 증언함으로써, 그분의 신성과 영원성을 드러내고, 동시에 자신이 얼마나 낮은 자인가를 고백했습니다. 그 앞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로 서야 할지를 배웁니다.

예수님은 우리보다 앞서 계십니다. 우리의 실패보다 앞서 계시고, 우리의 죄보다 앞서 계시며, 우리의 눈물보다 앞서 그 길을 걸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내 길을 내가 개척하려 애쓰지 말고, 이미 앞서가신 주님을 바라보며 걸어가야 합니다.

때로는 실수도 하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저자도 중간에 한 두곳 오타를 냈듯이, 우리의 삶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앞에 계시며, 우리를 끊임없이 일으켜 세우십니다. 그러니 낙심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며, 우리보다 앞서 계신 살아 계신 주님이십니다. 그분을 높이고, 그분을 증언하는 삶으로 오늘도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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