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29-34 묵상,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성령이 머무는 하나님의 어린 양

요한복음 1장 29절부터 34절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 증언한 말씀으로, 복음서 전체에서 매우 핵심적인 단락 중 하나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정체성, 그리고 삼위 하나님의 사역이 어떻게 한 몸처럼 작용하는지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 사역과 성령의 임재,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위에 대한 깊은 묵상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29절) 이 선언은 요한복음이 전하는 복음의 출발점이자 중심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단순한 선지자나 도덕 교사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 즉 구약에서 예표된 희생제물로 분명히 선언합니다. '지고 간다'는 헬라어 동사 ‘아이로’(αἴρω)는 ‘들어 올리다, 제거하다’라는 뜻으로, 죄를 짊어지고 그 죄를 제거하는 희생제물로서의 예수님의 역할을 분명히 나타냅니다.

특별히 ‘세상 죄’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특정 민족이나 시대에 국한되지 않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 즉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의 성취이며, 구약의 유월절 양과 이사야서의 고난받는 종(사 53장)이 하나로 통합되는 신학적 선언입니다.

이 어린 양은 죄 없는 완전한 제물이며, 인간의 죄를 속하기 위해 십자가로 향하는 길을 자발적으로 걸어가십니다. 우리는 종종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단순한 고난이나 비극으로 보지만, 성경은 그것이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이며, 성부, 성자, 성령의 완전한 협력 속에서 이루어진 구속의 승리임을 선언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무력한 죽음이 아니라, 능동적이며 대속적인 희생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 진리를 외쳤고, 우리 역시 이 진리를 붙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그분의 피가 나를 정결케 하고, 그분의 죽음이 나를 살립니다. 이것이 우리가 선포해야 할 복음의 본질이며,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성령이 머무시는 이

요한은 예수님이 단지 어린 양이라는 선언에 그치지 않고, 성령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중요한 증언을 합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무시는 것을 보았노라.”(32절) 이는 예수님의 메시아직이 성령에 의해 공적으로 인침 받았음을 나타내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머무셨다’는 헬라어 ‘메노’(μένω)입니다. 이는 단순히 잠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영구적인 거주를 의미합니다. 구약에서는 성령이 특정한 사역이나 인물에게 잠시 임했다가 떠나기도 했지만, 예수님에게는 성령이 영원히 머무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참 메시아이시며, 그 사역이 전적으로 성령의 권능 아래에서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성령의 임재는 예수님의 사역을 가능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신약 교회의 사역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셨다면, 우리 역시 성령 없이는 참된 사역도, 거룩한 삶도 불가능합니다. 복음은 단지 듣는 말씀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내야 하는 현실입니다.

요한은 자신이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33절). 이는 예수님께서 구약의 약속대로 오신 성령의 부어주시는 분이심을 나타내며,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완성된 신약 공동체의 시작과 연결됩니다. 성령의 세례는 단지 체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인침 받고 예수님의 몸 된 교회의 일원이 되는 사건입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성령의 역사를 단지 감정적 체험이나 은사 중심으로만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성령은 예수님을 드러내는 영이며, 그분 안에서 머무는 자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갑니다. 성령은 기름부으심 그 자체가 아니라, 기름부음을 통해 예수님을 우리 삶 가운데 실현시키시는 인격적 사역자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증언되신 예수

마지막으로 세례 요한은 “나는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34절)라고 말합니다. ‘보다’는 동사는 ‘헤오라카’(ἑώρακα)로, 단순한 시각적 목격이 아니라, 깊이 있는 통찰과 이해를 포함하는 경험적 인식을 말합니다. 그는 단지 예수님을 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정체를 성령의 계시로 깨닫고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의 신성과 메시아직을 동시에 포함하는 칭호입니다. 이것은 단지 종교적 경외의 표현이 아니라, 구속사의 절정에서 선포되어야 할 진리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 고백은 단지 교리적 동의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복음의 능력 안에서 살아가게 만드는 믿음의 핵심이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의 증언은 자신의 권위나 명성을 높이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반복해서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말했고, 자신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에 불과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누구보다 분명하고 담대하게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선포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도 이 같은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아니며, 그분의 영광을 비추는 거울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 거울이 흐려져선 안 됩니다. 예수님을 분명히 드러내야 하며,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세상 앞에 선포해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은 수많은 목소리로 가득 차 있지만, 그 가운데서 진짜 복음의 음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사람들은 복을 말하고, 성공을 말하고, 치유를 말하지만, 정작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소리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자 회개의 지점입니다.

우리는 세례 요한처럼, 자신을 낮추고 예수님을 높이며, 성령 안에서 그분의 신성과 대속의 사역을 증언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증인의 길이며, 성도가 감당해야 할 가장 영광스러운 부르심입니다.

결론

요한복음 1장 29절부터 34절은 복음의 가장 핵심적인 진리를 간결하면서도 강력하게 선포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며, 성령이 머무시는 참된 메시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모든 사실을 세례 요한은 자신의 눈으로 보고, 믿음으로 고백하였으며, 담대히 증언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도 이 동일한 복음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보고 있는가? 그분이 하나님의 어린 양이심을 믿고 있는가? 성령이 그분 안에 머무셨듯이, 우리 안에도 머무시며 예수님을 드러내고 계신가?

우리의 신앙은 단지 교리를 아는 데서 끝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삶이 되어야 하고, 선포가 되어야 하며, 증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라는 사실, 그분 안에 성령이 머무셨고 지금도 우리 안에 그 성령이 계시다는 확신, 그리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고백이 우리 삶 전체를 이끌어야 합니다.

가끔 문장을 다듬다가 오타도 생기듯이, 우리의 신앙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그런 실수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며, 오늘도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며 성령 안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이 복음을 붙들고 오늘도 담대히 예수님을 증언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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