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29 묵상,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요한복음 1:29은 요한복음 전체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으며, 동시에 복음서 전체의 구속사의 핵심을 강력하게 선포하는 장면입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향해 외친 이 한마디는 단순한 소개가 아니라, 성경 전체의 흐름 속에서 준비된 구속의 절정이며, 우리가 복음 안에서 붙들어야 할 가장 중요한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 더 깊이 묵상해 보시다.
세례 요한의 선언: 구약의 성취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향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외친 장면은 단순한 감탄이나 상징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이는 구약에 흐르고 있는 희생제사 제도의 중심을 예수님께로 모으는 선언입니다. '어린 양'이라는 표현은 구약의 제사 제도, 특별히 출애굽기 12장에서의 유월절 양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방되기 전날 밤,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써 죽음의 심판을 면했던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예표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또한 이사야 53장에서 말하는 고난 받는 종의 이미지,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 같이"(사 53:7)는 메시아가 죄를 대신 짊어지고 고난받을 존재임을 예언합니다. 세례 요한은 바로 그 메시아가 지금 자기 앞에 서 계신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고 간다"는 헬라어 동사 '아이로'(αἴρω)는 단순히 무거운 짐을 옮긴다는 의미를 넘어서, 죄를 속죄하기 위해 대신 짊어진다는 희생의 의미를 내포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지시는 죄가 단지 유대인의 죄가 아니라, "세상 죄"라는 표현입니다. 이는 복음이 유대 민족을 넘어 온 인류를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예수님의 사역이 전 세계를 향한 보편적인 구속 사역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만이 아닌, 모든 민족, 모든 시대의 사람들을 구속하시기 위해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이는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즉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의 성취입니다.
구속의 방식: 대속적 희생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 간다"는 표현은 단순한 윤리적 모범이나 감정적 공감의 차원이 아닙니다. 이것은 철저한 대속적 희생을 의미합니다. 구약의 제사에서 죄인은 자신의 죄를 제물의 머리에 안수함으로써, 자신의 죄가 제물에게 전가되는 상징적 행위를 했습니다. 그 제물은 죄인의 죄를 대신하여 죽임을 당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잠재우는 역할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습니다. 개혁주의 교리는 이것을 '형벌 대속' 혹은 '형법적 대속'이라고 설명합니다. 인간의 죄는 반드시 형벌을 받아야 하며, 그 형벌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놓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이셨지만, 죄인들을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이러한 대속적 희생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동시에 충족된 사건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죄를 그냥 덮고 지나가셨다면, 하나님의 공의는 훼손되었을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죄에 대한 심판을 아들에게 내리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이며, 복음의 중심입니다.
우리의 응답: 회개와 믿음
세례 요한의 외침은 단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와 믿음을 촉구하는 복음 선포입니다. "보라"는 말은 단순히 시선을 주라는 말이 아닙니다. 헬라어 '이데'(ἴδε)는 감탄적 명령어로서, 진지한 주목과 응답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는 그분이 누구인지 알고, 그분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전적인 믿음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단지 우리의 삶을 좀 더 좋게 만들어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 죽으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분 앞에 무릎 꿇고 회개하며, 자신의 의가 아닌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붙드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구원이며, 성도의 삶의 출발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종교적 행위로만 이해하며, 겉으로는 교회를 다니지만 예수님을 진정으로 "보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의 이 외침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울립니다. "보라!" 지금도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는 예수님을 주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결론
요한복음 1:29은 한 절이지만, 성경 전체의 구속사를 농축하여 담고 있는 놀라운 복음의 선포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선포함으로써, 구약의 희생제사가 실체로 나타났음을 외쳤고, 예수님의 사역이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임을 밝히 드러냈습니다.
이제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정말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는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나의 죄를 인정하고, 그분의 공로만을 의지하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나의 행위나 종교적 열심으로 스스로를 의롭게 만들려고 애쓰고 있지는 않은가?
세례 요한의 외침은 오늘도 우리 마음 깊은 곳에 회개를 촉구합니다.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 믿음으로 그분을 붙드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랑 앞에 우리는 무릎 꿇고, 그 은혜 앞에 감사하며, 그 보혈의 능력으로 날마다 살아가야 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이 복음의 진리를 붙드는 자만이 참 자유와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눈이 열리고, 우리의 심령이 깨어 예수님만 바라보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 분이 우리 죄를 '지고' 가셨다는 사실 앞에, 우리는 경외함과 감격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진리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 이 시간에도 유효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단 한번의 제사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고(히 10:12), 그 피의 효력은 오늘도 여전히 살아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죄책감이나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릴 필요 없습니다. 실수와 허물 속에서도 다시금 어린 양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일어날 수 있슴을 기억하십시오. 복음은 단지 교리나 지식이 아니라, 오늘 나를 살리는 생명의 능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