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10 묵상, 더 좋은 포도주
가장 좋은 포도주는 나중에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2장 10절은 가나 혼인잔치의 기적 가운데 등장하는 짧은 구절이지만, 이 말씀 속에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신 복음의 본질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연회장의 입을 통해 드러난 이 선언은 단순한 잔치의 감탄을 넘어, 하나님의 은혜의 원리와 구속사의 순서를 보여주는 깊은 신학적 진술입니다.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이 말씀 속에 담긴 주님의 뜻을 함께 살펴보며 복음의 은혜를 다시 새기고자 합니다.
일반적 질서와 하나님의 질서
연회장은 예수님이 바꾸신 포도주를 맛보고 놀라며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여기서 ‘좋은’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칼론’(καλὸν)으로 단순히 맛이 좋다는 의미를 넘어, 고귀하고 탁월하며 질적으로 뛰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낮은 것’은 ‘엘라소스’(ἐλάσσω)로 ‘더 못한 것, 질이 떨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연회장은 당시 잔치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던 관례를 말합니다. 손님이 처음 왔을 때는 좋은 포도주를 내고, 사람들이 어느 정도 취한 후에는 맛을 구별하기 어렵기 때문에 질 낮은 포도주를 내는 것이 당시의 상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잔치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처음보다 더 좋은 포도주가 뒤늦게 등장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풍속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장면은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복음을 대조하는 상징입니다. 율법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거룩을 보여주었고, 율법 안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표요, 그림자였을 뿐, 진짜 실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가장 좋은 포도주를 나중에 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가장 좋은 것을 숨기신 것이 아닙니다. 때가 참되었을 때, 바로 그 완전한 구원의 실체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4절은 말합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복음은 하나님의 때에,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질서입니다.
은혜는 언제나 더 깊어진다
본문은 복음의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복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깊이를 더해갑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처음 받은 은혜도 참으로 놀라운 것이지만, 복음의 진가는 시간이 흐를수록, 믿음이 자랄수록, 더 풍성히 체험되며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죄 사함의 기쁨으로 시작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님의 인도하심, 섭리, 말씀의 감동, 기도 응답의 역사 등을 통해 더욱 깊은 차원의 은혜를 맛보게 됩니다. 마치 처음 포도주보다 나중 포도주가 더 좋은 것처럼, 주님의 은혜는 우리의 인생 여정 속에서 점점 더 깊어지고, 더 감격스럽게 다가옵니다.
‘좋은 포도주를 지금까지 두었다’는 이 말은 곧 ‘아직도 은혜가 남아 있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단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은혜를 ‘한 번 받는 감격’으로 여기고, 그 다음부터는 내가 힘써 살아가야 한다고 오해하곤 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매 순간 새롭고, 주님은 날마다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시키신 포도주는 연회장을 놀라게 했을 뿐 아니라, 신랑의 명예를 지켜주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진짜 신랑은 예수님 자신이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세례 요한은 자신을 예수님의 친구로 묘사하며, “신랑의 음성을 듣는 것이 나의 기쁨이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영혼의 신랑으로서, 부족한 우리 인생의 잔치에 오셔서 기쁨을 회복시키시고, 끝까지 가장 좋은 포도주를 준비해 두신 분이십니다.
때로 우리는 은혜가 다 떨어졌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더는 감격이 없고, 예배가 식고, 기도가 메마를 때, 우리는 은근히 이렇게 말합니다. “이전에는 은혜가 있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다.” 지금이 가장 좋은 은혜를 누릴 때라는 뜻입니다. 복음은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현재의 능력입니다.
세상의 질서와 복음의 질서
이 말씀은 또한 세상의 방식과 복음의 방식이 얼마나 다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세상은 처음엔 화려하게 시작했다가 갈수록 시들고 퇴색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환영과 박수 속에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피로와 실망, 권태로 바뀝니다. 세상은 처음에 좋은 것을 내놓고, 나중에는 점점 시시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대이십니다. 처음은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끝이 더 좋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잠언 4장 1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의인의 길은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온전한 낮과 같이 되느니라.” 이것이 복음의 길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는 길은 처음보다 나중이 좋습니다. 세상의 인생은 힘이 점점 빠지고, 시간 앞에 초라해지지만, 믿음의 인생은 날이 갈수록 더 강해지고, 주님을 향한 소망은 더 선명해집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주시는 복음의 질서입니다.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고,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고, 마지막이 영광스럽게 되는 은혜의 순서입니다. 세상의 논리는 취한 후에 질 낮은 것을 내놓지만, 주님은 끝까지 좋은 것을 감추어 두셨다가, 때가 되면 풍성히 부어주십니다. 그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날마다 감사와 감격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우리가 때로는 실수도 하고, 오타처럼 삶에 삐끗한 순간도 있지만, 그럼에도 주님의 은혜는 줄어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좋은 것을 주기 위해 기다리고 계십니다. 지금의 부족함이 끝이 아님을 믿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우리는 마치 잔치의 끝에서 기운이 빠졌다고 느낄지 몰라도, 주님은 바로 그때 가장 좋은 포도주를 내어놓으십니다.
결론
요한복음 2장 10절은 단순히 연회장의 감탄을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 은혜의 성품, 복음의 본질을 담고 있는 깊은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좋은 포도주를 나중에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는 우리 삶의 마지막이 가장 영광스럽다는 약속이며, 예수님을 통해 시작된 새 언약의 은혜는 갈수록 더 깊어진다는 소망의 선포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과거의 은혜에 머무르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도 부어지고 있는 주님의 더 좋은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세상은 처음만 화려하지만, 복음은 끝이 더 영광스럽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늘 지금도, 앞으로도 더 좋습니다. 그 은혜 앞에 우리의 삶을 열고,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아가면, 주님은 가장 좋은 포도주로 우리의 인생을 다시 채우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