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11-15 묵상,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 마음에는 수많은 질문이 떠오릅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일하실까? 나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 나는 정말 구원을 받은 사람인가? 요한복음 3장 11절부터 15절까지는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이어가시며, 믿음의 본질과 구원의 핵심을 친히 가르쳐 주시는 장면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무엇을 믿고, 누구를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복음의 중심입니다.
위의 것을 말하거늘 믿지 아니하는구나
예수님께서는 1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예수님은 ‘우리는’이라는 복수형 표현을 사용하시는데, 이는 예수님과 구약의 선지자들, 또는 예수님과 삼위 하나님의 일치를 포함한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아는 것’, ‘본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인간적 추측이나 사변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보고 경험하신 분으로서 말씀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증언을 사람들은 받지 않았습니다. 특히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하늘로부터 온 것임을 믿지 않았습니다. ‘받지 아니한다’는 표현은 헬라어 ‘λαμβάνετε’(lambanete)로 단순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고의적이고 의지적인 거부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그 불신앙의 현실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우리도 때로 말씀을 듣지만, 삶에서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흘려보낼 떄가 많습니다. 말씀을 듣는 귀는 있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이 없을 때, 우리는 은혜를 놓치는 것입니다. 말씀은 생명이지만, 믿음으로 받지 않으면 아무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 점을 깊이 아파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12절)
‘땅의 일’은 성령으로 거듭나는 일, 곧 이 땅에서 일어나는 구원의 역사입니다. 이것조차도 믿지 않는다면, 더 깊은 하나님의 비밀을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예수님의 탄식입니다. 신앙의 세계는 논리로만 이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을 가진 자에게 열리는 하늘의 지혜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인자
예수님은 이어서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밝히십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13절) 이 말씀은 예수님의 선재성과 신성을 나타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이것은 곧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본래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분의 뜻을 따라 이 땅에 오셨다는 선언입니다.
‘인자’(헬. ὁ υἱὸς τοῦ ἀνθρώπου, ho huios tou anthrōpou)는 예수님께서 자주 사용하신 자신에 대한 호칭입니다. 이는 다니엘 7장에서 하나님의 권세를 위임받은 영광의 인물로 등장하며, 동시에 인간의 고난을 지고 가는 메시아적 정체성을 포괄하는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오신 인자, 곧 유일하게 하나님을 본 자로서 하늘의 일을 말씀하신다는 점을 강조하십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복음의 신뢰성을 확증해 줍니다. 복음은 인간이 만든 종교 체계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하늘의 계시입니다.
예수님만이 하늘과 땅을 잇는 유일한 사다리요, 중보자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곧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듣는 것이며, 그분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됩니다. 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구원의 시작입니다.
장대에 들린 놋뱀처럼, 십자가에 들리실 인자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구원의 방법을 밝히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14-15절)
여기서 예수님은 민수기 21장의 사건을 언급하십니다. 광야에서 불뱀에 물려 죽어가던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하나님은 놋뱀을 장대 위에 달아 높이 들게 하셨고, 그것을 바라보는 자마다 살게 하셨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구약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십자가에 들리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었습니다.
‘들린다’는 표현은 헬라어 ‘ὑψωθῆναι’(hypsōthēnai)로 단순히 높이 올려지는 것뿐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고난의 의미와, 동시에 부활과 승천으로 이어지는 영광의 의미를 함께 포함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고,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십니다.
영생은 단지 죽은 후 천국에 가는 것을 넘어서,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며,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뱀에 물린 자가 놋뱀을 바라보았듯이, 죄로 죽어가는 우리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내가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는가를 믿는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님,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하면서도 너무나도 깊은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이며, 우리의 죄를 위해 장대에 들리신 분입니다. 그분을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셨습니다.
우리 신앙의 본질은 이 믿음에 있습니다. 말씀을 듣되 거절하지 않고, 이해되지 않아도 신뢰하며, 예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품는 것이야말로 참된 구원의 시작입니다.
지금 우리의 삶 가운데 혹시 어둠과 혼란, 죄의 독으로 힘겨워하고 계시다면, 다시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장대에 들리신 인자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 안에 생명이 있고, 회복이 있으며, 영생의 소망이 있음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높이 들리셨고, 그분을 믿는 자는 결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이 복음을 붙드시고, 더욱 담대히 주님을 신뢰하며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