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10-14 다시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다시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4장 10절부터 14절까지는 예수님께서 수가성 여인에게 생수에 대해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이 대화는 단순히 물을 요청하고 대답하는 차원을 넘어, 구속사의 핵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잃어버린 자를 향해 어떻게 복음을 풀어내시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단지 여인의 갈증만 보신 것이 아니라, 그녀의 존재 자체가 얼마나 메마르고 피폐한 상태에 있는지를 꿰뚫어 보셨고, 그 속에 영원한 생수를 부어주려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생수에 대한 은혜로운 초대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10절). 여기서 예수님은 여인에게 두 가지를 알았더라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선물'이고, 둘째는 '네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헬라어로 'δωρεὰν τοῦ θεοῦ(도레안 투 데우)'로, 은혜로 거저 주어지는 하나님의 복을 가리킵니다. 이 문맥에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의미하며, 그분을 통해 주어지는 구원과 영생의 축복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자격이 있어서 받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자비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았더라면, 여인이 오히려 예수께 구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인간이 스스로의 갈증과 공허함을 인식할 때, 비로소 진정한 생명에 대한 갈망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여인은 아직 예수님의 정체를 알지 못합니다. 그녀는 그분을 단지 유대인 남성으로만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녀 안에 숨겨진 갈망과 목마름을 알고 계시며, 그 깊은 곳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생수를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생수(ὕδωρ ζῶν)'는 문자적으로는 '살아있는 물', 곧 흐르고 솟아나는 샘물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종종 성령의 은혜, 곧 영생을 주는 하나님의 생명력을 상징합니다(참조: 요 7:38-39). 이 물은 고인 물이 아니라, 계속해서 흐르며 생명을 유지시키는 물입니다. 예수님은 단지 인간의 일시적인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적 목마름을 해결하시는 분입니다.

세상의 물은 다시 목마르게 합니다

그러자 여인은 현실적인 질문으로 반응합니다. "주여, 물기를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게 싸움나이까?"(11절). 여인의 시야는 아직 지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눈앞에 보이는 물, 손에 잡히는 물질적 공급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땅에 속한지를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복음을 들을 때 우리는 종종 영원한 것을 바라보기보다는, 당장의 문제 해결에 집중합니다.

12절에서 여인은 이렇게 묻습니다.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들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이 질문은 단순한 비교가 아니라, 전통에 대한 의존을 보여줍니다. 여인은 조상 야곱이 주었던 물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는 구약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자, 과거에 대한 집착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과거의 상징이나 유산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복음은 전통 위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인 만남을 통해 실현됩니다.

예수께서 주시는 물, 영원한 생명으로 솟아나는 샘물

예수님은 13절과 14절에서 자신의 말씀을 더욱 분명하게 하십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대조를 발견합니다. 세상의 물은 다시 목마르게 합니다. 이는 인간이 어떤 형태로든 세상에서 만족을 구할 때마다 경험하는 반복적인 갈증을 상징합니다. 물질, 관계, 명예, 지식, 심지어 종교적 행위까지도 그 자체로는 우리의 존재 깊은 갈증을 채우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게 하는 물'입니다. 이는 단지 한 번 마시면 끝나는 물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서 지속적으로 역사하는 생명의 원천입니다. '그 속에서'라는 표현은, 성령께서 사람의 내면 깊은 곳에 거하시며, 그 삶 전체를 새롭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는 단지 구원받는 순간의 은혜가 아니라, 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한 지속적인 갱신과 생명의 흐름을 의미합니다.

헬라어로 '솟아나는(ἁλλομένου)'이라는 단어는 끊임없이 솟구치며 흘러넘치는 움직임을 뜻합니다. 이는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이며, 절망한 자에게 소망을 불어넣는 은혜입니다. 그 물은 단지 갈증을 없애는 정도가 아니라, 생명을 재생산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주시는 생수는 성령을 통해 내 속에서 역사하며, 그 흐름은 한 사람의 영혼을 넘어서 주변을 적시는 영향력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영생하도록'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시간의 무한함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생명, 곧 퀄리티 있는 생명, 하나님의 성품과 교제를 누리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 생명은 죽음을 이기고, 죄를 이기며, 영원한 안식과 평강으로 이끕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누리는 이 영생은 죽은 후에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도 성령 안에서 누릴 수 있는 현재적인 축복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이 생수의 은혜를 갈망하고 있는가? 혹시 우리는 여전히 야곱의 우물가에서 과거의 방식으로 물을 길어 올리려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주님은 우리가 물을 길을 그릇을 내려놓고, 그분 자신을 향해 마음을 열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결론

요한복음 4:10-14은 단지 수가성 여인과의 대화가 아니라, 오늘 우리 영혼을 향한 예수님의 직접적인 초청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신지를 밝히며, 우리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생수의 근원이심을 선포하십니다. 세상의 물은 결코 우리를 만족시킬 수 없으며, 반복되는 갈증만을 남깁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시는 물은 우리 안에서 솟아오르는 샘물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합니다. 이 생수를 마시는 자는 더 이상 외적 조건이나 과거의 전통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만족을 얻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야곱의 우물에서 눈을 들어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분이 생명의 근원이시며, 우리의 영혼을 영원히 만족케 하시는 구주이십니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요한복음 1:24-28 묵상, 너희 가운데 서 계신 그분

고난주간 인물 묵상

성경과 신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