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15-26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온다

요한복음 4장은 수가성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 장면을 통해 구속사의 흐름이 어떻게 유대 중심에서 열방으로 확장되는지를 드러내며, 인간의 본질적인 갈망과 하나님의 참된 예배에 대한 계시를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15절부터 26절까지는 이 대화가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는 본문으로, 외적인 물의 갈증에서 내면의 죄, 참된 예배, 그리고 메시아에 대한 계시로 나아갑니다. 이 본문은 예수님이 우리 삶의 중심을 향해 어떻게 다가오시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감추어진 상처를 드러내시는 주님

15절에서 여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그녀는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 안에서 무엇인가 참된 것을 느끼고 반응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물리적인 물을 생각하며 자신의 수고와 피로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그 깊은 말 속에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묻어납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피곤한 현실보다 더 깊은 차원, 곧 그녀의 영혼을 향해 말씀하시기 시작합니다.

16절에서 예수님은 갑작스레 말씀을 전환하십니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이 말씀은 전혀 새로운 주제를 꺼내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 여인이 진짜로 갈망하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 그녀의 목마름의 근원을 드러내기 위한 주님의 의도적 개입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외면보다 내면을 보시며, 문제의 핵심을 찌르십니다. 단순히 물을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여인의 무너진 정체성과 상처를 회복시키기 위한 일하심입니다.

17-18절에서 여인은 "남편이 없나이다"라고 대답하고, 예수님은 그녀의 삶을 폭로하십니다. "네가 남편이 없다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여기서 헬라어 원문은 단정적입니다. 'πέντε γὰρ ἄνδρας ἔσχες(다섯 남자를 가졌다)'는 표현은 단순히 이혼과 재혼을 반복한 사실보다, 그 여인이 얼마나 많은 관계 안에서 무너지고 상처받았는지를 암시합니다. 그리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다'라는 말은 그녀가 현재 어떤 죄악된 관계 안에 있음을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죄를 정죄하시기보다, 오히려 그 죄를 드러내시며 치유로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그녀의 고백은 짧지만, 그 안에는 깊은 상처와 두려움, 부끄러움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마주하시며 더 깊은 은혜로 이끄십니다. 죄를 드러냄은 정죄가 아니라 회복의 시작입니다. 회개는 죄를 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드러내시는 예수님의 시선을 느끼는 데서 시작됩니다.

참된 예배에 대한 새로운 계시

19절에서 여인은 당황하면서도 새로운 이해의 조짐을 보입니다.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그녀는 자신을 꿰뚫어보는 예수님의 시선에서 단순한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직감을 얻게 됩니다. 이 시점에서 그녀는 대화를 종교적 주제로 돌립니다. 20절에서 여인은 사마리아인의 종교적 논쟁을 꺼냅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고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겉보기에는 화제를 회피하는 듯하지만, 이 질문은 그녀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영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음을 보여줍니다. 예배의 장소에 대한 논쟁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간의 오래된 갈등이었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넘어서 더 근본적인 예배의 본질로 이끌어 가십니다.

21절에서 예수님은 선언하십니다.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여기서 예수님은 예배의 지리적 장소가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님을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분 자신이 예루살렘 성전보다 크신 하나님의 거처이시기 때문입니다(요 2:19). 그리스도 안에서 성전 개념은 성취되었고, 이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열립니다.

22절은 매우 신학적으로 도전적인 말씀입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사마리아인의 종교는 구약 율법의 일부만을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배제한 혼합주의적 형태였습니다. 예수님은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예배는 무지한 열정이 아니라, 참된 계시 위에 세워져야 한다고.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나온다는 이 말씀은, 단지 민족주의적 주장이 아니라, 구속사가 아브라함과 다윗을 통해 시작된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로서 예수 그리스도께로 연결된다는 진리를 드러냅니다.

23-24절은 이 본문 전체의 정점입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이 말씀은 신약의 예배 신학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구절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이제 예배는 장소나 제도, 겉모양에 의존하지 않고, 성령의 역사와 말씀의 계시 안에서 드려져야 합니다. '영과 진리'는 단순히 두 가지 요소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드리는 예배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영'은 단순한 인간의 감정이나 열정이 아닌, 성령을 의미하며(요 3:5, 요 7:39 참조),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요(요 14:6), 말씀 자체를 의미합니다(요 17:17). 그러므로 참된 예배는 성령의 내적 역사와 말씀의 바른 이해가 함께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단지 감정에 치우치거나, 반대로 교리에만 갇힌 예배가 아니라, 성령과 진리가 만나는 거룩한 만남의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메시아의 자기 계시, 그리고 대화의 절정

25절에서 여인은 메시아에 대한 소망을 드러냅니다.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느니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이 고백은 단순한 민간 신앙이 아니라, 그녀 안에 있었던 오랜 갈망과 기다림을 나타냅니다. 죄 가운데 있었지만, 그녀는 메시아를 기다리는 영혼이었고, 그 기다림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기다리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26절에서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메시아 되심을 명시적으로 드러내십니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헬라어로는 'ἐγώ εἰμι, ὁ λαλῶν σοι'입니다. 여기서 'ἐγώ εἰμι(에고 에이미)'는 요한복음에서 자주 등장하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언어로, 출애굽기 3:14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는 하나님의 이름과 직결됩니다. 예수님은 지금, 한낱 사마리아 여인에게, 세상의 구원자로서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이 말씀은 신학적으로도 깊은 충격을 줍니다.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에게도, 회당의 장로들에게도 아닌, 죄 많은 한 여인에게, 그 누구보다 외롭고 상처받은 자에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십니다. 이는 복음의 본질이 약한 자, 죄인, 잊힌 자를 향하고 있다는 분명한 선언입니다. 그리고 이 여인은 바로 그 계시의 첫 수혜자가 됩니다.

결론

요한복음 4:15-26은 수가성 여인과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참된 예배와 구속의 진리를 밝혀주는 복음의 보석 같은 말씀입니다. 주님은 그녀의 감추어진 상처를 드러내셨고, 그것을 통해 진정한 갈망의 본질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배란 장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과 진리로 드려지는 것임을 밝히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메시아 되심을 그녀에게 드러내시며, 죄인에게 먼저 오시는 은혜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 여인처럼 예수님의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우리의 갈망은 그분 안에서만 채워지고, 우리의 예배는 그분 안에서만 참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