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43-45 고향에서 환영 받지 못함
영광을 좇는 자, 영광을 돌리는 자
요한복음 4장 43절부터 45절은 예수님의 갈릴리 귀환을 배경으로 하지만, 단순한 이동 기록이 아니라 예수님을 향한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복음의 본질을 비추는 깊은 영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시면서도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릴리 사람들은 그분을 영접했습니다. 이 모순처럼 보이는 상황은 단순히 환영과 배척의 문제가 아니라, 참된 믿음과 외적 기적에만 매인 헛된 믿음의 차이를 드러내는 중요한 신학적 장면입니다.
선지자의 영광을 받지 못함
본문은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요 4:43-44)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친히 증언하시기를’이라는 표현은 헬라어로 ‘αὐτὸς γὰρ Ἰησοῦς ἐμαρτύρησεν’(autos gar Iēsous emarturēsen)으로, 예수님이 스스로 선언하셨음을 나타냅니다. 이는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의 사역과 경험에서 나온 깊은 통찰입니다.
‘존경을 받지 못한다’는 표현은 헬라어로 ‘οὐκ ἔχει τιμήν’(ouk echei timēn)인데, 여기서 ‘τιμή’는 단순한 칭찬이 아니라, 영광, 존중, 위엄이라는 의미까지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즉,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그의 존재 가치와 메시지를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에서 선지자나 메시아를 기다리면서도 정작 그 메시지 자체에는 귀를 닫는 이들의 모순된 태도를 드러냅니다.
이 구절은 나사렛 회당에서 예수님이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읽은 후 배척당했던 사건(눅 4:16-30)을 떠올리게 합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알아보지 못했고, 그분이 목수 요셉의 아들이라는 인간적 시선에 갇혀 있었습니다. 이는 곧, 인간의 눈에 익숙한 것에 갇힌 신앙은 참된 믿음을 방해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인정이나 외적인 환영에 의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역하시며, 사람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우리 신앙의 방향성을 점검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과 진리를 쫓는지, 아니면 종교적 익숙함 속에서 그분을 판단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표적에 의한 환영, 그러나 믿음은 아니다
45절은 놀라운 반전을 보여줍니다.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었다가 예수께서 명절 중에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러라”(요 4:45).
여기서 ‘영접하다’는 단어는 헬라어로 ‘ἐδέξαντο’(edexanto)로, 단순히 손님을 맞이한다는 수준을 넘어 환영하고 수용하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나 이 환영의 근거는 예수님의 말씀이나 존재 자체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명절 중에 하신 일’ 즉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기적과 표적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그 영접은 참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요한복음 2장 23-25절과 연결됩니다. “예수께서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는 그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여기서도 드러나듯, 표적을 보고 따르는 믿음은 일시적이며 불완전한 믿음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인격과 복음의 본질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기적과 유익을 좇는 태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이 얼마나 피상적인지를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믿음을 요구하시되, 단지 기적을 바라보는 자가 아닌, 그분의 말씀을 따라오는 자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참된 믿음은 말씀을 통해 형성되며, 표적은 그 믿음을 일깨우는 도구이지 목적이 되어선 안 됩니다.
구속사 속의 갈릴리 사역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가신 것은 단순한 우연이나 지리적 이동이 아니었습니다. 갈릴리는 예수님의 공생애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중심 무대이며, 그분의 가르침과 기적이 가장 왕성하게 드러나는 곳입니다. 흥미롭게도 이방과의 경계에 놓인 갈릴리는 ‘이방의 갈릴리’(마 4:15)라 불리며, 빛을 보기 어려운 어둠의 땅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은 복음을 전파하셨고, 이는 이사야의 예언의 성취이기도 합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사 9:2). 갈릴리는 복음이 종교적 중심지인 예루살렘을 넘어, 세상 모든 민족에게 향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입니다.
요한복음 4장까지의 전개는 예수님이 점점 경계를 넘어서 사역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유대에서 시작된 복음은 사마리아로, 그리고 갈릴리로 향합니다. 이는 구속사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복음은 민족과 지역, 사회적 신분을 넘어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은 이방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 의지를 드러내는 출발점이 됩니다.
또한 갈릴리는 무명의 어부들이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받은 자리입니다. 사회적으로 보잘것없는 자들이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하게 되는 이 지역은,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자격이나 배경이 아닌, 주님의 주권과 부르심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말해줍니다. 갈릴리의 영광은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일하셨다는 점에 있습니다.
결론
요한복음 4장 43-45절은 예수님의 갈릴리 귀환을 통해 표면적 환영과 내면적 불신의 대조를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환영했지만, 그 동기는 기적을 본 감탄에 불과했고, 예수님은 자신이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함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는 복음의 본질이 사람의 기대나 반응에 달려 있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와 장소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드러냅니다. 갈릴리에서 시작된 사역은 단지 지역적 확장이 아니라, 복음이 온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구속사의 물꼬를 여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할 때 기적이 아니라 말씀으로, 감정이 아니라 믿음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도 갈릴리 같은 일상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