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7:1-9 하나님의 때와 세상의 때
때를 따라 순종하시는 예수님의 길
요한복음 7장 1절부터 9절까지는 예수님께서 유대 지역에서 머무르시며, 유대인들의 박해를 피하시는 장면과 그에 이어 형제들과의 대화를 통해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때 사이의 분명한 구분을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이 짧은 본문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철저히 순종하시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간의 조급함과 세상의 인정을 구하는 태도와는 전혀 다른 하나님 나라 백성의 길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이 본문은 우리에게 ‘때’를 분별하는 영성과, 순종의 삶에 대해 깊이 묵상하게 합니다.
유대인을 피하신 예수님의 지혜 (7:1)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본문에서 ‘그 후에’라는 시간 표현은 앞선 6장의 사건, 곧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난 이후의 시점을 나타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려 한다는 표현은 표면적인 논쟁을 넘어서, 종교 권력자들의 강한 적개심과 공공연한 위협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다니시고’(περιεπάτει, periepatei)는 헬라어 현재시제로, 계속해서 거니셨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단순히 한 곳에 머무르지 않으시고, 지속적으로 복음을 전파하고 계셨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 지역, 곧 예루살렘 중심의 종교 권력의 본산지에서는 활동하지 않으십니다. 이유는 단순히 박해를 피하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그분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십니다. 이는 제자도와 사역의 중요한 본질을 보여줍니다. 충성은 무모함이 아니라, 때에 대한 분별력과 순종을 포함한 것입니다.
형제들의 제안과 세상의 방식 (7:2-5)
2절부터는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워짐을 언급합니다. 초막절은 수장절이라고도 하며, 광야에서의 하나님의 보호를 기념하는 유대 최대의 명절 중 하나였습니다. 이 시기는 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이는 때로, 유대인들의 종교적 관심이 집중되는 때였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이 등장하여 말합니다.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3절)
여기서 형제들은 겉으로는 예수님의 공적 사역을 권면하는 듯 보이나, 그 말의 뉘앙스는 세속적 성공의 논리와 일치합니다.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은 없다"(4절)는 말은, 사람들의 주목과 칭찬을 받기 위해 대중 앞에 나서야 한다는 전형적인 세상적 논리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과 능력을 믿고 따르기보다는, 그것을 자기 방식으로 포장하고 이용하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5절은 그들의 진심을 드러냅니다.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이 말씀은 매우 충격적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자란 형제들조차 그분을 참으로 믿지 않았다는 사실은, 믿음이 단순한 지식이나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조명과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진리를 보여줍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가족이라 할지라도, 믿음 없이는 그분을 따를 수 없다는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와 세상의 때 (7:6-9)
6절에서 예수님은 형제들의 제안에 대해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여기서 ‘때’는 헬라어로 ‘카이로스’(καιρός)로, 단순한 시간 개념을 넘어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정해진 은혜의 시기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과 고난, 죽음, 영광까지 모든 일정이 아버지의 뜻에 따라 정해져 있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반면 세상에 속한 자들은 아무 때나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움직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뜻이 앞서며, 하나님의 때보다 자기 때가 중요합니다.
7절은 예수님과 세상의 본질적인 차이를 드러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 예수님은 세상의 죄악과 부패를 직면하고 드러내시는 분이셨기에, 세상은 그분을 미워합니다. 반면 세상에 속한 자들은 세상과 대립하지 않기에 미움을 받지 않습니다. 이 구절은 제자도의 본질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리를 증언할 때 우리는 세상의 미움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피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 미움조차 하나님의 뜻 안에서 받아들이셨습니다.
8-9절에서 예수님은 형제들에게 먼저 명절에 올라가라고 하십니다. "나는 아직 이 명절에 올라가지 아니하노니, 내 때가 아직 차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리고 9절에서 예수님은 갈릴리에 그대로 머무르십니다. 이는 단순히 형제들의 권면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표에 철저히 순종하시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사람의 기대나 요구가 아니라, 오직 아버지의 뜻에 따라 움직입니다.
예수님의 이 태도는 모든 신자의 삶에 있어 본이 됩니다. 우리는 종종 사람들의 기대나 눈치를 보며 결정하려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이 아닌 때는 그 어떤 열심도 헛된 결과를 가져옵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묻고 기다리며, 철저히 그분의 시간 안에 순종하는 삶이 참된 제자의 모습입니다.
결론
요한복음 7장 1절부터 9절은 짧지만 깊은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는 본문입니다. 이 본문은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의 박해 속에서도 아버지의 때를 따라 지혜롭게 행하시는 모습, 형제들의 세속적 제안과 그들의 믿음 없음, 그리고 예수님의 철저한 순종을 대조적으로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셨고, 세상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의 명예나 인정, 전략적 타이밍보다 하나님의 시간표에만 순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고난과 거절의 길이었지만, 결국 그 길을 통해 구속의 역사가 완성되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타이밍을 기다릴 줄 알고, 사람의 조급한 충고나 세상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으며, 아버지의 뜻 앞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 그것이 진정한 제자의 삶이며, 예수님을 따르는 자의 길입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의 때를 따라 살고 있습니까? 그분의 때에 귀 기울이며, 때를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