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7:25–31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예수를 아는가, 보내신 이를 아는가
예수님의 예루살렘에서의 가르침은 단순한 교훈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7장 25절부터 31절까지의 본문은 예수님을 둘러싼 오해와 논쟁, 그리고 그 속에서도 드러나는 하나님의 섭리와 구속사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판단하고 해석하려 들지만, 정작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함으로 진리를 놓치고 맙니다. 이 본문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를 바로 아는 것, 그리고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 얼마나 본질적인 신앙의 문제인지를 깊이 성찰하게 합니다.
예수에 대한 혼란과 판단 (25–27절)
25절에서 예루살렘 사람들은 "이는 그들이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라고 말하며, 예수님에 대한 긴장과 논쟁이 단순한 소문이 아니라 실제로 유대 사회의 중심에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생명에 위협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예수님을 향한 공적인 적개심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26절에서 이들은 혼란스러워합니다. 예수님께서 공개적으로 말씀하시는데도 종교 지도자들이 아무 대응을 하지 않으니, 혹시 그들도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이 갖는 진리 인식의 모순을 보게 됩니다. 겉으로 드러난 행동과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진리를 판단하려는 태도는, 늘 혼란을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눈앞의 증거와 여론에 따라 진리를 재단하지만, 진리는 그런 것으로 증명되지 않습니다. 진리는 계시에 의해 알려지고, 믿음에 의해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입니다.
27절에서 그들은 말합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더라." 이것은 당대 유대인들 사이에 있었던 메시아의 신비로운 출현에 대한 기대를 반영합니다. 그들은 메시아는 갑자기, 알 수 없는 곳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믿었기에, 예수님이 갈릴리 출신이라는 점을 근거로 그분을 부정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놓친 것은, 메시아의 정체는 출신이나 배경이 아니라, 그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진리를 해석하려 하지만, 하나님의 구속사는 인간의 계산과 논리를 초월하여 진행됩니다.
나는 그를 알고 그가 나를 보내셨느니라 (28–29절)
28절에서 예수님은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큰 소리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여기서 예수님은 사람들의 판단을 바로잡으십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사람이라는 인간적 사실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분이 이 땅에 오신 진정한 출처, 곧 하나님의 보내심을 강조하십니다.
여기서 "보내심을 받았다"는 표현은 단지 물리적 파견이 아니라, 사명과 권위, 정체성을 포함하는 신학적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권위가 스스로에서 나오지 않았음을 밝히며,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가운데 이 땅에 오셨음을 선포하십니다. 이는 성육신 교리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 사람이시며,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메시아이십니다.
29절에서 예수님은 더 나아가 "나는 그를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신성과 하나님 아버지와의 영원한 관계를 드러내는 신비한 선언입니다. 여기서 "그에게서 났고"라는 표현은 요한복음 전체에 반복되는 신적 유래, 곧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과 본질상 하나이심을 나타내는 고백입니다. 이는 단지 선지자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본체로서 오신 그리스도의 자기 선언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이 본문을 통해 삼위일체의 신비를 깊이 있게 해석해왔습니다. 성부께서 성자를 보내셨으며, 성자는 성부의 뜻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 순종하셨고, 그 안에서 신적 본질과 인격의 분리 없는 사역의 통일성을 드러냅니다. 예수님의 이 선언은 단지 사람들의 오해를 바로잡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계시하는 선언이며, 인간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로만 알 수 있는 진리입니다.
예수님을 붙드는 자들, 믿는 자들 (30–31절)
30절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잡고자 하지만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여러 차례 "때가 이르지 않았다"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정확한 시간표 아래 진행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 부활은 결코 우연이나 인간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때는 인간의 시간과 다르며, 하나님의 섭리는 항상 그 때에 맞게 정확히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까지, 아무도 그분을 손댈 수 없다는 이 선언은 하나님의 주권과 보호, 그리고 구속사의 계획이 얼마나 견고하게 서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말씀입니다.
31절에서는 본문의 분위기가 반전됩니다.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며,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이 사람이 행하신 표적이 이 사람보다 더 많으랴 하니"라고 고백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행하신 기적과 가르침, 그리고 말씀의 권위를 통해 그분이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됩니다. 이는 단지 논리적 설득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와 하나님의 계시 가운데 일어난 믿음의 반응입니다.
이 믿음은 당시의 유대인들이 갖고 있던 메시아관을 넘어서야 가능한 반응입니다. 단지 정치적 해방자가 아니라, 참 생명의 구원자,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로서의 예수님을 믿는 신앙은 하나님께서 마음을 여시지 않으면 결코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그 믿음은 동일하게 성령의 조명과 말씀의 능력으로 주어지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결론
요한복음 7장 25절부터 31절까지의 본문은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분열, 그러나 그 가운데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섭리와 진리의 계시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겉모습과 배경으로 판단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그를 아는 자는 하나님을 알게 된다고 선언하십니다. 진리는 인간의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로만 알 수 있으며, 믿음은 성령의 역사 가운데 일어나는 응답입니다.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을 우리가 진정 알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보내신 그리스도를 붙들고 살아가는 믿음의 길을 다시금 붙들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