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7:45–52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진리를 거부하는 자들의 어리석음

요한복음 7장 45절부터 52절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감동한 사람들과, 그 말씀을 거부하고 억압하려는 종교 지도자들 간의 갈등이 더욱 뚜렷해지는 장면입니다. 종교적 권위자들이 자기 기득권에 갇혀 진리를 외면하는 모습 속에서, 인간의 교만과 어리석음이 어떻게 구속 역사를 거스르는지를 보게 됩니다. 동시에 이 본문은 성령의 조명 없이는 어떤 지식과 지위도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을 강하게 드러냅니다.

무장한 자들이 무장하지 못한 예수 앞에서 물러나다 (45–46절)

45절은 이전 본문에서 파견되었던 성전 경비병들이 빈손으로 돌아오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들은 종교 지도자들의 명령에 따라 예수님을 잡으러 갔지만, 결국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 채 돌아옵니다. 이들이 말합니다.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이는 단순한 놀람이나 존경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인간의 권위가 무너지는 현장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단지 웅변이나 설득력이 아니라, 권세 있는 진리 자체였습니다. 이 경비병들은 무력과 명령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진리에 감동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외형이나 권력 구조를 넘어서는 능력이 있으며, 진리는 무기를 가진 자들을도 무장해제시킬 수 있습니다. 이 장면은 마치 사도행전에서 로마 백부장 고넬료와 간수들이 복음 앞에서 마음이 열렸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이 장면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성령의 역사 안에서 마음을 움직이며, 인간의 결단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됨을 강조합니다. 이 병사들은 훈련된 자들이었지만, 참된 권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말씀에 있었던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오만한 자기 확신 (47–49절)

46절의 보고를 들은 바리새인들은 곧바로 경멸의 반응을 보입니다.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무지한 대중, 율법을 알지 못하는 저주받은 자들이라고 단정합니다. 이들의 말 속에는 지식과 특권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자신들만이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고 믿는 종교적 교만이 배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라고 반문합니다. 이는 곧, 사내들인과 바리새파와 같은 종교적 엘리트들 가운데 예수를 믿는 자가 없다는 점을 들어, 예수님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다수결이나 사회적 권위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것은 진리의 부족이 아니라 그들의 완고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49절에서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라고 한 말은, 무지를 이유로 저주를 선포하는 오만한 정죄입니다. 그러나 정작 율법을 알고 있다는 자들이 율법의 성취이신 예수님을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말씀의 위선을 드러냅니다. 이는 예수님의 비유에서 말한 바, "너희가 보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는 선언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신학적 지식이나 종교적 권위를 방패삼아 참된 믿음을 외면하는 위험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가난한 자, 심령이 겸손한 자와 함께하겠다." 진리는 머리가 아니라, 겸손한 심령에 임합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자기 확신은 오히려 진리로부터 그들을 멀어지게 만들었습니다.

니고데모의 반론과 거부된 질문 (50–52절)

50절에서 우리는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는 사내들인 중의 한 사람으로, 다른 지도자들과는 달리 예수님에 대한 신중한 태도를 유지합니다. 그는 직접적으로 예수님의 편을 드는 대신, 율법의 원칙을 들어 조심스럽게 반론을 제기합니다.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이 질문은 매우 정당한 법적 요구입니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그의 말을 논리로 대하지 않고, 지역적 편견으로 반격합니다. 그들은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고 말하며, 예수님의 출신 지역을 문제 삼습니다. 이 반응은 진리에 대한 논의보다는 인신공격과 감정적 배척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진리의 문제를 사람의 배경, 학력, 출신 등으로 왜곡하려는 태도와도 닮아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을 놓고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예수를 배척할 이유만을 찾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니고데모의 질문은 이 본문 전체에서 유일하게 공의와 진리를 향한 작은 희망의 불빛과도 같습니다. 이후 요한복음 19장에서 그는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자로 등장함으로, 그의 믿음이 점차 자라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개혁주의 전통은 니고데모를 통해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인도하시는지를 강조하며, 믿음은 점진적이며, 은혜는 조용히 역사한다는 원리를 확인시켜 줍니다.

결론

요한복음 7장 45절부터 52절은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다양한 반응을 보여줍니다. 진리를 인정한 성전 경비병, 그 진리를 무시한 종교 지도자들, 그리고 조용히 질문하며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니고데모. 이 세 부류는 오늘 우리 안에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말씀 앞에서 마음이 열려 있는 자입니까, 아니면 기존의 신념에 갇혀 있는 자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진리를 듣고, 진리를 따르라. 그 길만이 생명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