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0:1-6 강해,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문으로 들어가는 목자

요한복음 10장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선한 목자이심을 선포하시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는 요한복음 9장에서 날 때부터 맹인 된 자를 고치신 후, 바리새인들의 영적 맹목과 참된 믿음에 대한 논쟁을 이어가는 연결된 메시지입니다. 이 배경 안에서 예수님은 목자와 양의 비유를 통해 참된 영적 지도자와 거짓된 인도자의 구분을 명확히 하십니다. 오늘 본문 1절부터 6절은 이 비유의 서론부로서, 복음의 길과 하나님의 백성의 참된 목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 그리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참된 제자의 삶에 대한 핵심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10:1)

예수님은 이렇게 비유를 시작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1절) 여기서 반복되는 “진실로 진실로”(ἀμὴν ἀμὴν)는 예수님의 말씀의 절대적인 권위와 진정성을 강조하는 수사입니다. 이는 단순히 무게감을 주는 서술이 아니라, 듣는 자로 하여금 이 말씀이 생명과 진리의 핵심임을 주목하게 하는 선언입니다.

‘문’은 헬라어로 “θύρα”이며, 통상적으로 합법적 출입을 뜻합니다. 당시 팔레스타인에서는 양 떼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αὐλή, 울타리)를 만들고, 그 출입구는 하나였으며 목자만이 그 문을 통해 드나들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 담을 넘어 들어오는 자는 도둑이나 강도임이 분명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 구조를 통해 합법적으로 양 떼에게 접근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구분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절도'(κλέπτης)는 은밀히 훔치는 자, '강도'(λῃστής)는 폭력을 사용하여 빼앗는 자를 의미합니다. 즉, 외형상으로는 양 떼를 돌보는 자처럼 보일 수 있으나, 실상은 양을 이용하고 해를 끼치는 자들입니다. 이는 당시 바리새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을 겨냥한 비판이며, 본질적으로 거짓된 영적 지도자에 대한 경고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접근하는 방식과 동기가 그 사람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목자는 문으로 들어가며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10:2-3)

2절은 참된 목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목자는 헬라어로 “ποιμήν”이며, 이는 단순히 직업적인 양치기가 아니라, 생명과 사명을 다해 양을 돌보는 자를 의미합니다. 참된 목자는 합법적인 문으로 들어갑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합당한 방식으로 백성을 돌보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 자신이 바로 그런 참된 목자이십니다.

3절에서는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문지기’(θυρωρός)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참된 목자의 사역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영적 분별을 지닌 존재, 혹은 성령의 사역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존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목자는 양의 이름을 ‘각각’ 부릅니다. 이는 공동체 안에 있어도 하나님께서 우리 각 개인을 인격적으로 알고 계시며, 부르신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익명적 부름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인격적인 소명입니다. 또한 “인도하여 낸다”는 표현은 헬라어 “ἐξάγει”이며, 이는 단순히 밖으로 이끄는 것을 넘어서, 구원의 길로 이끄는 출애굽적 뉘앙스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인도하여 생명과 자유의 길로 이끄시는 목자이십니다.

양은 그의 음성을 아는지라 (10:4-6)

4절에서는 목자와 양 사이의 관계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라는 말씀은 목자와 양 사이의 깊은 신뢰와 친밀함을 묘사합니다. 목자는 양의 뒤가 아닌 ‘앞서 가며’ 인도합니다. 이는 권위의 강제적 명령이 아니라, 본을 보이고 이끌어가는 목자의 참된 모습입니다.

양은 그의 음성을 ‘안다’(οἴδασιν)고 하였습니다. 이 동사는 단순히 들리는 소리를 인식한다는 뜻이 아니라, 관계적 안목에서 파생된 ‘경험적 앎’을 뜻합니다. 이는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음성을 단지 지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넘어, 그 음성을 통해 위로와 확신, 생명의 방향을 경험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그 음성을 구별하고 따라갈 수 있는 귀를 가지게 됩니다.

반면 5절은 거짓된 목자에 대한 양의 반응을 보여줍니다.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여기서 ‘타인’(ἀλλότριος)은 공동체 안에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그리스도의 사역과 무관한 자들을 의미합니다. 양은 본능적으로 진짜 목자와 거짓된 목자를 구분할 줄 압니다. 이는 성령께서 신자의 마음에 주시는 분별력이며, 그로 인해 우리는 진리의 길을 따라가게 됩니다.

6절에서 요한은 이 모든 내용을 가리켜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더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비유’는 헬라어로 ‘παροιμία’인데, 이는 비유나 속담, 짧지만 깊은 뜻을 담은 말씀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듣는 자의 마음과 믿음의 태도에 따라 열리는 진리의 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전문가들이었지만,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었고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참된 목자의 양이 아님을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결론

요한복음 10:1-6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된 목자이시며, 그의 양들은 그의 음성을 알고 따르며, 거짓된 지도자의 음성은 따르지 않는다는 본질적인 신앙의 원리를 가르쳐 줍니다. 참된 목자는 문으로 들어갑니다. 그 문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며, 복음의 길이며,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우리는 종교적 외형이나 사람의 능력에 속지 않고, 예수님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는 영적 귀를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양의 이름을 각각 부르시며 인도하시는 인격적인 목자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단순히 보호하는 분이 아니라, 앞서 가며 생명의 길을 여시는 분이십니다.

이 땅에는 여전히 많은 음성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중 참된 생명의 음성은 단 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뿐입니다. 그 음성을 듣고 따라가며, 거짓된 인도자들을 분별하고, 참된 목자이신 주님만을 따르는 믿음의 양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순종하며 그분의 인도하심 속에 거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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