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7:25-36 강해 초막절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정체성과 하나님의 때

예수님께서 초막절 중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군중 사이에서 일어난 논쟁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메시아의 정체성과 하나님의 주권적 시간에 대한 깊은 신학적 질문을 드러냅니다. 이 본문은 예수님의 기원과 사역, 그리고 그분을 거부하는 자들과의 긴장 속에서 하나님의 때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락입니다.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 (25-27절)

25절에서 예루살렘 사람들, 즉 지역 유대인들이 말하기를, "이는 그들이 죽이려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며 놀라워합니다.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는 계획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성전에서 담대히 말씀하시는 것을 목격하며 혼란스러워합니다. 예수님의 담대한 태도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시간에 대한 철저한 신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26절에서 그들은 또 말합니다.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저에게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그리고는 이방 사람들처럼 무지한 의문을 품습니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 즉, 예수의 당당한 태도와 공적 가르침을 통해 지도자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한 것인가 의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27절에서는 다시 불신의 기류가 흘러나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를 아노라.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그가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유대 전통 가운데 메시아는 갑작스럽고 신비하게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에, 예수님의 나사렛 출신이라는 사실이 그들의 믿음에 장애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들의 생각은 표면적인 출신지에만 머물고, 예수님의 참된 기원, 곧 하늘로부터 오셨다는 진리를 보지 못합니다.

하늘로부터 오신 예수 (28-29절)

예수께서는 28절에서 성전에서 외쳐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이 말씀은 역설적으로 그들의 지식이 피상적이며 실제로는 알지 못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헬라어 본문에서 이 구절의 어조는 예수님의 단호한 선언으로, 자신이 단순한 인간적 기원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29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파송자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나는 아는 이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여기서 '나다'(ἐγὼ εἰμί)라는 표현은 요한복음 전체에서 신적 자기 계시의 공식처럼 반복됩니다. 예수님은 단지 선지자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이며, 아버지와의 깊은 관계 속에 있는 자입니다. 이는 요 1:18에서 아버지 품 속에 계신 독생하신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셨다는 선언과 연결됩니다.

배척과 하나님의 시간 (30-32절)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은 당연히 유대 지도자들의 분노를 일으킵니다. 30절은 "그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의 특징 중 하나는 "때"(ὥρα)에 대한 강조입니다. 이는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속사의 정점, 곧 십자가와 부활의 시간입니다. 예수님의 사역과 죽음은 인간의 음모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정확하게 성취됩니다.

31절에서 많은 무리가 예수를 믿습니다. "메시아가 와도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은 표적을 행하겠느냐?" 이 질문은 사실상 수사적이며, 이미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는 고백입니다. 요한복음에서 표적은 항상 믿음으로 이끄는 도구로 사용되며, 이 장면은 믿음의 씨앗이 점차 자라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32절에서는 바리새인들이 무리의 이런 반응을 듣고 대제사장들과 함께 예수를 잡으려 병졸을 보내는 긴박한 장면이 이어집니다. 신앙의 불꽃이 일기 시작하자 종교 권력은 더 강하게 진압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영광의 승천과 인식되지 못한 진리 (33-36절)

33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고 하십니다. 이는 승천의 예고이며,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승귀(升貴) 곧 죽음, 부활, 승천을 하나의 사건으로 묘사합니다. 예수님의 존재는 일시적이며, 구속사는 그의 떠나심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34절에서 예수께서는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십니다. 이는 단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믿지 않는 자들의 영적 소외를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그분의 아들을 인식할 수 없으며, 결국 영원한 단절을 겪게 됩니다.

35-36절에서 유대인들은 예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가 흩어져 사는 헬라인 중에 가서 헬라인을 가르치려는가?" 여기에는 조롱의 뉘앙스가 담겨 있으며, 그들의 영적 무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떠나심은 단지 지리적 이동이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전환점이며, 이는 오직 믿음으로만 참여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결론

요한복음 7:25-36은 예수님의 정체성과 사역, 그리고 하나님의 구속사의 시간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유대인들은 겉으로 예수를 알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의 참된 기원과 사명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분의 때가 이르기까지는 어떤 인간의 힘도 그를 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예수를 떠나 보내고도 결코 그가 계신 곳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이 본문은 우리가 예수를 누구로 알고 있는가, 그리고 그분의 말씀 앞에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가를 묻게 합니다. 겉으로의 지식이 아니라, 그분을 보낸 하나님을 알고 믿음으로 응답하는 자만이, 그분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음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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