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8:12-20 강해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
세상의 빛이신 예수
예수님께서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 선포하신 이 장면은 요한복음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 언어 중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입니다. 어둠 속에 있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개입이며, 진리를 거부하는 인간의 상태를 드러내는 동시에 예수님을 따르는 자에게 주어지는 생명의 길을 제시하시는 선포입니다. 이 본문은 단순한 자기소개가 아니라, 구약에 대한 성취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밝히는 복음의 핵심이 담긴 선언입니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 (12절)
12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이 말씀은 단순한 비유나 상징을 넘어, 구속사의 언어입니다. "세상의 빛"이라는 표현은 이사야서에서 예언된 메시야의 정체성과 연결됩니다. 이사야 9:2에서는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라 했고, 이사야 42:6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종을 "이방의 빛"으로 삼으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헬라어 원문에서 '빛'(φῶς)은 단지 시각적 밝음이 아니라, 생명과 진리,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단지 진리를 아는 자가 아니라, 진리 자체이며, 생명 자체라는 것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나를 따르는 자"는 제자의 개념이며, 단순히 예수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를 그의 뒤에 두고 순종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라는 표현은 본문 전체에서 죄와 죽음, 심판의 상태를 뜻하는 '어둠'(σκότος)과 대조됩니다. 결국 예수님은 모든 인간이 자연적으로 어둠 가운데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생명의 길을 찾을 수 없고, 빛이신 예수님을 따를 때에만 생명의 빛을 얻게 됩니다. 이 빛은 일시적인 지식이나 감정의 위로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 되는 진리입니다.
바리새인의 반박과 예수의 자기 증거 (13-18절)
예수님의 이 선언 앞에 바리새인들은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13절에서 그들은 말합니다. "네가 너를 위하여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니라." 이는 유대 율법에서 정한 증거의 원칙을 근거로 한 반박입니다. 신명기 19:15에 따르면, 두세 증인이 있어야 사실이 확정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자기 증언은 객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차원을 달리합니다. 14절에서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내 증언이 참되니"라고 하시며, 그 근거를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의 기원이 하늘로부터이며, 그의 사명이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다시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여정에 있다는 것을 전제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 1:1의 서론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하나님이시며, 그 존재 자체가 진리입니다.
15절에서는 그들의 판단 기준을 지적하십니다.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여기서 '육체'(σάρξ)는 단지 물질적 몸을 뜻하기보다는, 타락한 인간의 본성과 한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피상적 판단 기준을 넘어서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16절에서 이어지는 말씀은 역설처럼 들립니다.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은 참되니" 이는 예수님이 단독으로 판단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17-18절에서 예수님은 그들의 율법적 요구에도 응답하십니다.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이 참되다 기록되었으니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 예수님은 단지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과 연합된 자로서 말씀하십니다. 이는 요한복음의 고유한 삼위일체적 진술이며, 예수님의 증언이 인간적인 한계를 넘어 절대적 권위를 가진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아버지를 알지 못하는 자들 (19-20절)
19절에서 그들은 묻습니다.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이 질문은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아버지가 하나님이심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인간적 기준과 지식 안에서 판단하며, 그들의 질문은 조롱과 무지를 동시에 포함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또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이는 예수님과 아버지의 연합성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의 영적 무지를 드러냅니다. 예수님을 아는 자만이 하나님 아버지를 알 수 있고, 이는 요한복음의 중심 주제입니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는 말씀은 단순한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인격적 관계의 부재를 지적하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 14:9에서 예수님이 빌립에게 하신 말씀—"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과 동일한 맥락입니다.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며, 이는 종교적 열심과 상관없이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영적 비극입니다.
20절은 이 장면의 배경을 설명합니다.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앞에서 하셨으나 그를 잡는 사람이 없었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이 구절은 요한복음에서 자주 등장하는 구속사의 시간 개념, 즉 '때'(ὥρα)에 대한 강조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인간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서 성취될 일입니다. 이때를 아직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기에, 그 누구도 예수님을 해칠 수 없습니다.
결론
요한복음 8:12-20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세상의 빛으로 선포하신 위대한 선언이며, 이를 통해 하나님의 진리와 생명이 이 땅 가운데 임했음을 증언하신 장면입니다. 이 빛은 단지 도덕적 교훈이 아니라, 죄악의 어둠 속에서 인간을 생명으로 이끄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 본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살아있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도 바리새인들처럼 육체의 기준, 종교적 틀, 인간적 판단으로 예수님을 평가하며 외면하고 있는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그분의 빛을 받아 어둠을 벗고, 그 빛을 따라 사는 삶으로의 부르심입니다.
빛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라, 그러면 어둠에서 벗어나 생명의 빛을 얻게 될 것이다. 오늘 우리의 마음과 삶의 방향이, 이 주님의 초청에 겸손히 응답하며 빛 가운데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