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8:37-44 강해, 거짓의 아비

 

거짓의 아비와 진리의 아들들

요한복음 8장은 점점 더 날카로운 영적 논쟁으로 나아갑니다. 31절에서 시작된 예수님과 유대인들 간의 대화는 이제 그들의 실체를 예수님께서 낱낱이 드러내시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그들은 육체적 혈통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자처하였고, 종교적 자부심 속에 예수님의 말씀을 배척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진정한 정체성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밝히시며, 참된 자녀됨은 육적 출신이 아니라 영적 일치, 곧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수용과 순종임을 선언하십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인가, 그의 행위를 따르는 자인가? (8:37-39)

예수님은 먼저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주장에 대해 일정 부분 인정하시며 출발하십니다.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37절). 여기서 '자손'으로 번역된 헬라어 "σπέρμα"는 씨앗, 즉 육적 혈통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다음 이어지는 말씀을 통해 그것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십니다.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을 두지 아니하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즉 그들의 행위는 아브라함의 본성을 따르지 않으며, 도리어 예수님을 죽이려 하는 마귀적 본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존재와 사역이 "하나님께 들은 그것을 말하는 것"(38절)이라고 밝히십니다. 이는 자신이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일치하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것을 대언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함께 가지고 계신 진리를 말씀하시는 것이란 선언입니다. 반면 유대인들은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그것을 행하느니라"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그들의 아비가 하나님이 아님을 이미 전제하고 계시며, 그 아비가 누구인지 본문 후반에서 명확히 드러내십니다.

이에 유대인들은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고 대답합니다. 이때 사용된 단어는 '아브라함'을 단지 조상으로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정체성과 구원의 기반으로 삼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거늘"(39절). 여기서 '행사'로 번역된 "ἔργα"는 단순한 행동 이상의 개념으로, 삶의 방식과 그 사람의 존재를 규정짓는 실천적 신앙의 열매를 뜻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순종하고, 낯선 하나님의 인도에도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맡긴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을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님을 증명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난 자인가, 다른 아비에게 속한 자인가? (8:40-43)

예수님은 그들의 참된 정체성을 조금 더 깊이 파헤치십니다. "이제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이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40절) 예수님은 자신을 단순한 교사로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직접 들은 것을 말하는 자, 곧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로 소개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예수님을 거절하고 죽이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동이며, 아브라함의 행위와는 전혀 무관한 본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책망하시며, "너희는 너희 아비의 행사를 하는도다"(41절)고 하십니다. 그 말은 즉, 그들의 영적 아비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이에 강하게 반발하며, "우리가 음행으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 하나님이시로다"라며 자신들의 정통성을 강하게 주장합니다. 여기서 '음행으로 나지 않았다'는 말은 육적인 출생이나 혼합주의를 부정하는 유대인의 종교적 자부심을 반영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하나님 백성은 단순한 외적 혈통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수용하고 순종하는 영적 자세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42절에서 그들의 주장을 반박하시며,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사랑하였으리니"라는 말은 헬라어로 "ἠγαπᾶτε"인데, 이는 지속적이고 의지적인 사랑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결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이어지는 43절은 매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여기서 '깨닫다'는 말은 헬라어로 "γινώσκετε", '알다, 인식하다'를 의미하며, '들을 줄 알지 못한다'는 "ἀκούειν"은 단순한 청취가 아니라 순종을 전제하는 들음을 뜻합니다. 이 말은,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단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 귀가 막혀 있다는 사실, 즉 본질적인 소속이 하나님께 있지 않음을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거짓의 아비, 마귀에게 속한 자들 (8:44)

44절은 이 본문의 정점이며, 예수님께서 그들의 영적 실체를 명확히 폭로하십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여기서 "마귀에게서 났다"는 표현은 단순한 비유적 언어가 아니라, 실제적인 영적 출생과 본성의 연계를 뜻합니다. 이는 요한복음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이중 소속, 곧 하나님께 속했는가 아니면 세상(혹은 마귀)에게 속했는가의 문제와 직결됩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본성을 이어서 설명하십니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살인과 거짓, 두 가지 속성이 마귀의 본질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거짓으로 사람을 미혹했고, 결과적으로 아담과 하와를 죽음으로 이끌었으며, 가인과 아벨 사이에 최초의 살인이 일어나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사탄입니다.

여기서 "거짓"은 헬라어로 "ψεῦδος"이며, 단순히 사실이 아닌 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 자체를 왜곡하고 거스르는 근본적인 반역을 의미합니다. 마귀는 진리와는 전혀 본질을 공유하지 않으며, 그 속에는 진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를 따르는 자들은 자연스럽게 거짓에 익숙해지고, 참된 진리를 듣지도 깨닫지도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바로 그 마귀의 아비에게 속했음을 밝히심으로, 그들의 종교적 위선을 철저히 무너뜨리십니다.

결론

요한복음 8:37-44은 매우 도전적인 본문입니다. 예수님은 단지 사람들의 감정을 어루만지지 않으시고, 그들의 실체를 정면으로 드러내십니다. 겉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종교적 전통 속에 산다고 자부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하며 오히려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진리를 듣고도 깨닫지 못하며, 오히려 자신의 욕심과 교만을 따라 사는 삶이라면, 우리의 영적 소속이 어디에 있는지를 진지하게 점검해야 합니다.

참된 자녀는 그 아버지의 성품을 닮습니다. 하나님이 아버지이시라면,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며 그 말씀을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가 아버지라면, 겉으로는 종교인의 모습을 하고 있어도 결국은 거짓과 미움, 살인적 언어와 정죄의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를 정결케 합니다. 오늘 이 본문 앞에 겸손히 서십시오. 우리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그리고 무엇을 닮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십시오. 진리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면, 우리는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거짓의 아비를 따라 살던 옛 본성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진리 안에 거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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