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8:45-51 강해 진리를 말하나 믿지 않는 자들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8장은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에 벌어진 격렬한 논쟁의 한복판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이 논쟁은 단순한 의견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과 그분이 선포하신 진리에 대한 수용과 거부라는 본질적인 문제에서 비롯됩니다. 45절부터 51절까지의 본문은 예수님이 진리를 말하시기 때문에 오히려 믿지 않으려 하는 인간의 근원적 거부와, 그 거부를 극복하고 생명에 이르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진리를 말하나 믿지 않는 자들 (8:45-47)

예수님께서 먼저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45절) 여기서 “진리”로 번역된 헬라어는 "ἀλήθειαν"입니다. 이는 단지 사실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에서 흘러나온 절대적인 실재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진리를 말하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는 역설을 지적하십니다. 진리 자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셨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그 진리 앞에 눈을 감고 귀를 닫습니다.

이어지는 46절에서 예수님은 반문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예수님은 자신의 삶과 말씀에 어떠한 죄도 없음을 선언하십니다. 여기서 “죄”는 헬라어 "ἁμαρτία"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그러진 모든 상태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예수님은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진리만을 말씀하셨고, 죄의 그림자조차도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믿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47절은 이를 확증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여기서 '듣는다'는 말은 단지 소리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하고 순종한다는 의미입니다. '듣지 않는다'는 것은 단지 청각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 소속의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속한 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 말은 영적 귀속의 문제이며, 중립은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속했거나, 그렇지 않으면 마귀에게 속해 있습니다.

예수님을 모독하는 유대인들의 반응 (8:48-50)

예수님의 날카로운 선언 앞에 유대인들은 더 이상 논리로 맞서지 못하고, 인신공격으로 반응합니다.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48절) ‘사마리아 사람’이란 표현은 당시에 매우 모욕적인 말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혼혈이자 이단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귀신 들렸다’는 말까지 더하여, 예수님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온유하지만 분명하게 응답하십니다.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거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49절)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을 공경하며, 그 뜻을 온전히 따르고 있습니다. ‘공경하다’는 말은 헬라어 "τιμῶ"로, 단순한 존경의 표현이 아니라, 실제 삶과 말로 그분을 영화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반면 유대인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아들을 ‘귀신 들렸다’고 하며 멸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는 가장 분명한 증거입니다.

50절에서 예수님은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영광'은 "δόξα"로, 사람들 앞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명예의 욕구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으셨고, 오직 아버지께서 정하신 뜻만을 따르셨습니다. 그리고 판단하시는 분, 곧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의롭게 판결하실 것을 확신하고 계십니다. 이는 예수님이 스스로를 정당화하려 하지 않으시고, 모든 판단을 하나님 아버지께 맡기신다는 깊은 신뢰의 표현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말씀 (8:51)

이 단락의 절정은 51절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ἀμὴν ἀμὴν)라는 이중 강조를 통해 이 말씀의 절대적인 중요성을 선언하십니다. 이는 유대 랍비들이 사용하는 표현을 뛰어넘어, 스스로 권위를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만이 할 수 있는 선언입니다.

“내 말을 지킨다”는 표현에서 ‘지킨다’는 헬라어 "τηρήσῃ"는 단지 기억하거나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따르고, 마음과 삶으로 순종하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을 단지 청중으로서 듣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새기고 살아내는 자를 말합니다. 그런 자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죽음'은 단순한 생물학적 죽음이 아닙니다. 헬라어 "θάνατον"은 종종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영원한 분리를 뜻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죽음을 '보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보다’는 "θεωρήσῃ"로, 직접 체험하거나 직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영원한 죽음을 경험하지 않을 것이라는, 구원과 생명에 대한 확정적인 약속입니다.

이 말씀은 그 어떤 철학이나 윤리의 가르침도 줄 수 없는 선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고 따르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약속입니다. 이것은 영원한 생명과 연결된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은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되며, 장차 죽음을 넘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완성됩니다.

결론

요한복음 8:45-51은 예수님의 말씀과 그분 자신에 대한 수용 혹은 거부가 생명과 죽음의 갈림길임을 선명히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사람들은 진리를 말하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도리어 그를 모독하며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시며, 그 말씀을 지키는 자가 영원한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라는 복음의 핵심을 전하십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 서 있는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예수님의 진리를 들을 때 우리의 마음은 열려 있습니까? 아니면 유대인들처럼 종교적 자부심이나 자기 확신에 사로잡혀 귀를 막고 있습니까? 진리는 언제나 그 자체로 선포되며, 우리의 반응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진리는 단지 정보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죽음을 결정짓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십시오. 그것이 곧 참된 믿음의 길입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거기서 우리는 죽음을 넘어서는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진리를 말하시는 주님의 음성 앞에 겸손히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 안에 거하며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복된 제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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