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3장 주해적 묵상

 

로마서 13장 주해적 묵상

그리스도인의 공적 삶과 사랑의 빚, 그리고 깨어 있는 종말의 윤리


1. 본문 서두의 신학적 위치와 역할: 복음의 윤리가 공적 세계로 나아가는 자리

로마서 13장은 로마서 12장부터 이어지는 권면 단락의 한가운데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개인의 경건과 교회 내부의 관계를 넘어 공적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함을 보여 주는 핵심 본문입니다. 12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모든 긍휼”을 근거로 몸을 산 제사로 드리는 예배를 말했고, 공동체 안에서 은사와 사랑의 질서를 세우며, 원수에게도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권면했습니다. 13장은 바로 그 흐름을 이어받아,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에 맡기는 삶이 공공 질서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사회적 책임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밝힙니다.

특히 로마서 13장은 두 개의 큰 축으로 구성됩니다. 하나는 13:1-7에서 권세(ἐξουσία)와 국가 권력, 세금과 공적 의무를 다루는 부분입니다. 다른 하나는 13:8-14에서 사랑(ἀγάπη)과 율법(νόμος)의 성취, 그리고 종말론적 긴박감 속에서 깨어 살라는 권면을 다루는 부분입니다. 이 두 축은 분리된 주제가 아니라 하나의 복음적 윤리로 연결됩니다. 바울이 말하는 복음은 내면의 구원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이 땅의 질서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까지 포괄합니다. 로마서 13장은 그 포괄성을 가장 구체적인 언어로 보여 줍니다.

2. 권세(ἐξουσία)와 하나님의 섭리: 복종(ὑποτάσσω)은 우상숭배가 아니라 질서에 대한 신앙적 응답입니다

2.1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 주권의 공적 차원

바울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ἐξουσίαις ὑπερεχούσαις)에게 복종하라”고 말하며,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고, 있는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τεταγμέναι)라”고 선언합니다. 이 말은 국가 권력이 언제나 의롭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 질서 안에서 무질서를 억제하고 공동선을 지키기 위해 ‘통치’라는 구조를 허락하셨다는 뜻으로 읽어야 합니다. 성경신학적으로 이것은 창조와 타락 이후의 세계를 동시에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하나님은 혼돈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죄로 인해 파괴되는 공동체를 완전히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공적 질서를 통해 악을 제어하고 선을 보호하는 장치를 두셨고, 그 장치가 통치 권세입니다.

그러므로 복종(ὑποτάσσω)은 하나님만을 왕으로 고백하는 신앙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무정부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무질서를 미화하지 않으며, 하나님은 공공의 선을 위한 질서를 사용하십니다. 이 점에서 로마서 13장은 신앙이 현실과 분리되는 것을 막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도피한 사람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질서 아래 살아가되, 그 질서가 궁극이 아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2.2 “하나님의 사역자(διάκονος)”: 공권력의 목적과 한계

바울은 통치자를 “하나님의 사역자(διάκονος)”라고 부르고, 또 “하나님의 일꾼(λειτουργός)”이라고도 말합니다. 이 표현들은 공권력이 본래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지는 기능을 맡았음을 뜻합니다. 바울은 권세가 “선(ἀγαθόν)을 위하여” 존재한다고 말하며, 악을 행하는 자에게 두려움이 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특히 “칼(μάχαιρα)을 가지지 아니한다”는 표현은 공권력이 질서 유지와 악의 억제를 위한 강제력을 가질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언어는 공권력의 한계를 암시합니다. 권세가 하나님의 사역자라면, 그것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책임지는 종입니다. 종은 주인의 뜻을 벗어날 때 정당성을 상실합니다.

성경 전체의 증언을 함께 놓고 보면, 복종은 무조건적 절대 순종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궁극 충성 아래에서의 질서 존중입니다. 사도행전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원리는, 권세가 하나님 뜻(θέλημα)을 정면으로 거스르며 하나님 자리를 요구할 때 신자의 양심(συνείδησις)은 단호히 하나님 편에 서야 함을 보여 줍니다. 로마서 13장은 권세를 신격화하지 않지만, 권세를 악마화하지도 않습니다. 바울은 창조 질서와 타락 현실 사이에서 그리스도인이 취해야 할 균형을 제시합니다.

2.3 “진노(ὀργή)와 양심(συνείδησις)”: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 앞의 의식으로

바울은 복종의 이유를 “진노(ὀργή)” 때문만이 아니라 “양심(συνείδησις)”을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신학적 전환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처벌이 무서워서만 법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책임 의식으로 공적 책임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양심은 단지 개인적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아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시민적 순종은 비굴한 굴복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나오는 성숙한 참여입니다. 바울은 공포의 윤리로 교회를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는 복음으로 빚어진 양심의 윤리로 교회를 세우려 합니다.

3. 세금과 존경: 교회의 공적 신뢰는 복음의 길을 넓히는 토양입니다

바울은 세금과 관세를 내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바울의 관심은 단지 사회 적응이 아닙니다. 로마 교회는 제국의 심장부에 있었고,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있는 공동체였습니다. 반로마적 열정이나 불필요한 충돌은 곧 복음 전파의 길을 막고, 교회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교회가 불필요한 반역자로 오해받지 않게 하려는 목회적 지혜를 보여 줍니다. 동시에 그는 교회가 세상과 타협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는 교회가 공적 삶에서 신뢰를 잃지 않음으로, 복음의 증언이 불필요한 장애를 만나지 않게 하려 합니다.

교회론적으로 이것은 중요한 원리입니다.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지만,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주(κύριος)로 고백하지만, 그 고백은 무책임을 낳지 않고 책임을 낳습니다. 세금을 내는 행위는 구원을 얻기 위한 공로가 아니라, 복음이 만들어 내는 공적 성실의 열매입니다. 바울은 사회적 의무를 가볍게 여기지 않음으로 복음의 신뢰를 지키고, 동시에 그리스도인의 궁극 충성이 어디에 있는지 흐리게 만들지 않습니다. 이 긴장 속에서 교회는 세상 속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공동체로 서게 됩니다.

4. 사랑(ἀγάπη)의 빚과 율법의 성취: 복음 윤리의 중심은 관계적 선함입니다

4.1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부채가 아니라 평생의 의무

13:8에서 바울은 방향을 바꿔 “피차 사랑의 빚”을 말합니다. “빚”(ὀφειλή)은 갚고 끝내는 계산을 떠올리게 하지만, 바울이 말하는 사랑의 빚은 갚아도 사라지지 않는 빚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계약의 의무를 넘어, 복음 안에서 새로 형성된 관계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이 사랑은 감정의 호감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웃의 선을 실제로 추구하는 의지이며,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드리는 복음적 삶의 방식입니다.

4.2 “사랑은 율법의 완성(πλήρωμα)”: 새 언약의 윤리는 폐기가 아니라 성취입니다

바울은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말하며, 간음, 살인, 도둑질, 탐내지 말라는 계명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연결합니다. 결론은 “사랑은 율법의 완성(πλήρωμα)”입니다. 여기서 성경신학적 의미가 드러납니다. 바울은 율법(νόμος)을 무가치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그는 율법이 지향한 윤리적 목적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그 사랑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언약 백성의 삶으로 구현된다고 말합니다. 10장에서 그리스도가 율법의 끝(τέλος)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폐기가 아니라 성취의 도달이었습니다. 13장에서도 같은 원리가 반복됩니다. 사랑은 율법의 요구를 무너뜨리는 해체가 아니라, 율법이 참으로 원했던 공동체적 선을 실현하는 방식입니다.

구원론적으로 이는 중요합니다. 우리는 사랑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 결과 사랑이 열매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형상입니다. 교회가 이 순서를 놓치면, 사랑은 율법주의가 되고, 율법은 정죄의 도구가 됩니다. 바울은 복음의 순서를 지키면서 사랑의 필연성을 선포합니다.

5. “때(καιρός)를 알라”: 종말론적 긴박감이 윤리를 깨웁니다

5.1 “이제는 잠(ὕπνος)에서 깰 때”: 구원은 가까워지고 밤(νύξ)은 깊었습니다

바울은 13:11에서 “이 시기(καιρός)를 알고”라고 말하며, “이제는 잠에서 깰 때”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때(καιρός)는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하나님이 구속사를 진행하시는 결정적 때를 뜻합니다. 바울은 “밤(νύξ)이 깊고 낮(ἡμέρα)이 가까웠다”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세상의 어둠이 여전하다는 현실과, 그 어둠이 영원하지 않다는 종말론적 확신을 동시에 담습니다.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새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고, 주의 날이 다가오고 있기에 성도는 깨어 살아야 합니다.

종말론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윤리적 각성입니다. 바울은 “구원(σωτηρία)이 믿을 때보다 가까웠다”고 말합니다. 구원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성도는 완성을 기다리며 현재를 다르게 삽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음은 공포에 떠는 신경질이 아니라, 약속을 아는 사람의 절제와 분별입니다.

5.2 “빛의 갑옷(ὅπλα τοῦ φωτός)”과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ἐνδύσασθε)”: 세례적 정체성의 재확인

바울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 말하며, 마지막에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라고 권면합니다. 옷 입다(ἐνδύω)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새 정체성을 드러내는 강한 표현입니다. 성도는 자기 도덕을 장식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덧입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속한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 그리스도를 입습니다. 이는 로마서 6장의 세례(βάπτισμα) 언어와도 연결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산 자는 이제 그리스도의 성품을 옷처럼 입고 세상 속에서 드러내야 합니다.

바울이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방탕과 술 취함, 음란과 호색, 다툼과 시기 같은 행위들은 단지 개인의 도덕 문제만이 아니라 공동체를 찢고 증언을 무너뜨리는 어둠의 습관들입니다. 종말론적 빛을 향해 걷는 공동체는 어둠의 방식으로 싸우지 않습니다. 바울은 “육신(σάρξ)을 위하여 그 정욕(ἐπιθυμία)을 이루게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육신은 하나님 없이 자기중심으로 사는 존재 양식이며, 정욕은 그 자기중심성이 낳는 욕망의 폭주입니다. 종말이 가까울수록 성도는 더 방종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절제해집니다. 깨어 있음은 빛을 향한 삶의 정돈입니다.

6. 교회론·구원론·종말론의 연결: 이중 시민권 속에서 교회가 지켜야 할 중심

로마서 13장은 교회가 이 땅의 시민으로서 질서를 존중하면서도,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합니다. 교회론적으로 교회는 대체로 공적 질서에 기여하며 이웃의 선을 추구해야 합니다. 구원론적으로 그 기여는 구원을 얻기 위한 공로가 아니라, 이미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의 열매입니다. 종말론적으로 교회는 “낮이 가까움”을 알기에, 세상의 어둠을 따라 살지 않고 빛의 무장을 합니다. 이 세 요소가 함께 갈 때 교회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습니다. 국가를 절대화하지 않고, 국가를 저주하며 무책임으로 도망가지도 않습니다. 윤리를 구원의 조건으로 만들지 않고, 윤리를 폐기하며 복음을 싸구려로 만들지도 않습니다. 종말을 공포로 만들지 않고, 종말을 핑계로 현재를 방치하지도 않습니다. 바울은 이 균형 위에서 로마 교회를 세우려 합니다.

7. 바울의 목회적·구속사적 의도: 제국의 심장부에서 복음 공동체를 보호하고 성숙시키다

로마서 13장을 쓰는 바울의 의도는 매우 실천적이며 동시에 구속사적입니다. 그는 로마 교회가 불필요한 오해로 인해 탄압을 자초하지 않게 하려 합니다. 또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있는 공동체가 정치적 감정과 사회적 긴장 속에서 분열되지 않게 하려 합니다. 무엇보다 그는 복음이 개인의 구원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의 삶과 공적 책임으로 확장되어야 함을 가르칩니다. 바울에게 복음은 세상을 떠나는 종교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다른 방식으로 살아내는 하나님 나라의 삶입니다.

구속사적으로도 13장은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오셨고, 성령이 교회 안에 거하시며, 주의 날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 큰 시간표 안에서 교회는 깨어 있어야 하고,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하며, 세상의 질서를 존중하되 그 질서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가 이 긴장을 성숙하게 감당하도록, 복음에서 흘러나오는 공적 윤리를 제시합니다.

8. 묵상적 결론: 하나님 앞의 양심으로 살고, 사랑의 빚을 지고, 그리스도로 옷 입는 하루

로마서 13장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한쪽으로 단순화하지 않습니다. 권세에 대한 복종은 하나님을 잊는 굴종이 아니라, 하나님 앞의 양심(συνείδησις)으로 질서를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사랑의 윤리는 감정의 장식이 아니라, 율법의 완성(πλήρωμα)으로서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실제적인 선함입니다. 종말의 긴박감은 불안의 조장이 아니라, 때(καιρός)를 아는 사람의 깨어 있음이며, 어둠의 습관을 벗고 빛의 무장(ὅπλα)을 갖추는 삶의 정돈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실천의 중심에는 한 문장이 서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ἐνδύσασθε).

우리는 매일 여러 권세의 목소리를 듣고, 여러 욕망의 요구를 마주하며, 여러 갈등의 유혹을 만납니다. 그때 로마서 13장은 우리를 다시 복음의 중심으로 데려갑니다. 정죄함이 없는 자로서, 그러나 방종하지 않고, 사랑의 빚을 지고, 공적 책임을 성실히 감당하며, 낮이 가까움을 기억하는 자로 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은 나를 더 돋보이게 하는 종교적 포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성품과 통치가 내 삶의 방식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옷을 입을 때, 교회는 세상 속에서 불필요한 걸림돌이 되지 않으면서도 복음의 향기를 잃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도는 오늘의 질서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다가오는 낮을 바라보며 깨어 걸어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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