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장 17절 묵상, 율법과 은혜
율법은 모세로,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요한복음 1장 17절은 구약과 신약, 율법과 복음, 그림자와 실체를 나누는 전환점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한 절 안에 담긴 대비와 선언은 단지 문학적인 장치가 아니라, 구속사의 중심을 찌르는 신학적 진술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율법이 무엇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은혜와 진리가 무엇인지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단순한 지식의 축적을 넘어서,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사 안에서 우리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본문으로 드어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았고
본문은 먼저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라 선언합니다. 여기서 ‘율법’은 히브리어로는 토라(Torah), 헬라어로는 노모스(νόμος)로 번역되며, 단순한 규율이나 법령을 넘어 하나님의 뜻을 계시한 말씀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모세는 이 율법을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달한 중보자였습니다.
모세는 구약시대의 대표적 인물로, 율법을 수여받은 자요,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뜻을 선포한 선지자였습니다. 그의 삶은 율법 자체처럼 철저하고 정결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전달한 율법은 궁극적 구원을 이루는 수단은 아니었습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며(롬 3:20),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고,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의의 기준을 보여주는 기능을 했습니다. 율법은 마치 거울과 같아서, 인간의 죄성을 있는 그대로 비춰주는 기능을 하였고, 동시에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함을 드러내는 통로였습니다.
이 말씀은 율법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율법의 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게 합니다. 율법은 은혜가 아니라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율법 또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잠정적인 은혜요, 예표적인 계시였습니다. 곧 오실 그리스도를 향해 인도하는 초등교사 역할을 했습니다(갈 3:24). 이처럼 율법은 거룩하고 신령한 것이지만, 완전한 구원을 이루는 길은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죄된 본성과 타락한 의지는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는 연약함 속에 있었기 때문에, 율법은 오히려 정죄의 도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세로 말미암은 율법은 진리의 한 단면을 담고 있었지만, 완성된 계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 중 일부였고, 그 계획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납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으며,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입니다. 오타가 여기에 들어갔어야 하는데... 하여튼 모세가 전한 것은 진리를 위한 준비였습니다.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 본문의 중심 문장이 나타납니다.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여기서 ‘온 것’이라는 표현은 헬라어 ‘에게네토’(ἐγένετο)로, ‘되었다’, ‘실현되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단지 도달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와 진리가 현실로 성취되었다는 선언입니다. 이 구절은 곧 구약이 예표한 모든 희망이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되었음을 선언하는 핵심 구절입니다.
먼저 ‘은혜’는 우리가 앞서 본 16절과 연결됩니다.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호의,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한 죄 사함, 영적 생명, 모든 복의 근원입니다. ‘진리’는 단지 지식이나 개념이 아닙니다. 요한복음에서 ‘진리’는 인격적이며, 하나님의 계시 그 자체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셨듯이, 진리는 인격 안에서 드러납니다. 진리는 어떤 철학적 이상이나 논리체계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며, 그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은혜와 진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것’이라는 점입니다. 곧, 은혜와 진리는 예수님 없이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단지 예수님이 그것을 가져오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분 자신이 곧 은혜이며, 진리이신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론적으로 매우 중요한 진술입니다. 율법은 하나님 외부에서 전달된 계시였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내부에서 오신 말씀 자체입니다. 곧 예수님은 단순한 예언자나 교사 그 이상으로, 하나님의 형상이며, 신적 본질을 지닌 분입니다.
이 대조는 단순한 비교가 아니라, 계시의 발전과 완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이 점을 강조하며, “옛적에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으나, 마지막 날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히 1:1-2)고 선포합니다. 모세는 중보자였지만, 예수님은 그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선지자들이 모자이크처럼 나누어 계시를 전달했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총체적으로 드러내신 분이십니다.
예수 안에서 율법의 완성
우리는 종종 율법과 은혜, 진리를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17은 그것들을 단절된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며, 은혜와 진리는 그 율법을 성취함으로써 나타납니다. 이 율법의 성취는 단순히 외적인 계명 준수가 아니라, 내면의 순종과 사랑으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 안에서 율법은 생명으로, 자유로, 사랑으로 다시 해석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 5:17)고 하신 말씀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모든 요구를 완벽하게 이루신 유일한 의인이십니다. 그분은 율법의 정죄 아래 있는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 스스로 율법 아래로 들어가셨습니다(갈 4:4-5). 예수님께서 율법을 지키심으로 우리에게 전가되는 의는 단순한 법적 선언이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의 성품을 담은 구속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은혜는 율법의 무가치함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거룩과 사랑을 현실 속에서 실현하신 것입니다. 진리는 계시의 종착점에서 밝히 드러나는 하나님의 본체이며, 예수님은 그 진리를 육신으로 나타내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율법과 복음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오히려 조화를 이루며 성취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을 통해 예수님께로 인도되며, 예수님 안에서 율법의 뜻을 비로소 이해하게 됩니다. 이 말씀이 가르치는 바는, 구약과 신약, 율법과 복음, 모세와 예수 그리스도 사이의 단절이 아니라 성취와 완성의 연속성입니다. 율법은 그림자이고, 그리스도는 실체입니다. 그림자만 붙들면 공허하지만, 실체가 임하면 그림자는 사라집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이 율법주의로 기울거나, 반대로 값싼 은혜로 흐르지 않으려면, 이 진리를 분명히 붙들어야 합니다. 은혜와 진리는 결코 분리되지 않으며, 그 중심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우리는 율법의 엄중함을 외면하지 않되, 그것을 성취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참된 자유와 생명을 누려야 합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요한복음 1장 17절은 우리에게 율법과 은혜, 진리와 계시의 핵심을 다시 정리해 줍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왔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의로우심을 보여주는 선한 계시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인간이 구원에 이를 수 없었습니다. 율법은 진리의 일부였지만, 진리의 충만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드러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을 온전히 이루시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만 은혜를 경험할 수 있고, 진리를 알 수 있으며, 하나님의 계시를 온전히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완전한 해석이며, 모든 계시의 종착점이자 시작점이 되십니다.
오늘 우리도 이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나는 여전히 나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은혜 없이는 단 하루도 설 수 없는 자임을 고백하는가? 예수님 없이 진리를 알 수 없고, 은혜를 누릴 수 없다는 이 단순하고도 깊은 진리를 마음에 새기십시오. 그 고백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복음의 빛 안에서 다시 정렬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십시오. 모세는 우리를 인도하는 자였고,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그 안에서 진정한 은혜와 진리를 누리는 오늘 하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복음은 지식이 아니라 생명이며, 그 생명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