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7:32–36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오지 못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오지 못하리라

요한복음 7장 32절부터 36절은 예수님을 둘러싼 유대 지도자들의 반응과 예수님의 영적 메시지가 충돌하는 장면입니다. 이 짧은 본문 안에는 인간의 어리석은 판단과 하나님의 계시 사이의 깊은 간극이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가실 길, 곧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영광의 길을 말씀하시지만, 유대인들은 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그 의미를 오해하고 곁길로 빠집니다. 이 본문은 우리가 진리를 받아들이기 위해 영적 눈을 떠야 함을 강하게 요청합니다.

예수를 잡고자 하는 자들, 그러나 때가 이르지 않음 (32절)

32절은 상황의 긴장감을 극대화합니다. "무리가 예수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는 구절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었고, 이에 대해 종교 지도자들이 위기감을 느꼈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예수를 잡기 위해 대제사장들과 함께 아랫사람들, 즉 성전 경비병을 보냅니다.

여기서 바리새인과 대제사장이 함께 협력했다는 사실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당시 이 둘은 신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대립 관계였지만, 예수님을 제거한다는 공통 목적 앞에서는 연합합니다. 이는 인간의 죄성이 어떤 방식으로도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진리를 억압하려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전체를 통틀어 반복되는 하나의 원리가 여기서도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단 한 번도 사람들의 위협이나 시도에 의해 좌우되지 않으십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시간표 아래서 진행됩니다. 아무리 종교 지도자들이 분노하고 계획을 세워도, 예수님의 때가 이르기 전에는 누구도 그분을 손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음모보다 항상 더 깊고 더 견고합니다.

예수님의 선언: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오지 못하리라 (33–34절)

33절과 34절에서 예수님은 경고처럼, 그러나 동시에 진리의 초대처럼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예수님은 자신이 곧 떠날 것을 선언하십니다. 이는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십자가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을 포함한 복음의 핵심을 간결하게 요약한 말씀입니다.

특별히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는 구절은 성부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예수님의 신적 정체성을 다시금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단순한 선한 영향력의 전파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려와 하늘로 돌아가시는 구속 사역의 완성이며, 그분은 철저히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그 길을 걸어가고 계십니다.

34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이는 단순히 지리적인 이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심판의 선언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 믿지 않는 자는 결국 예수님이 가시는 구원의 길에 함께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이야말로 영원한 생명과 사망을 가르는 말씀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이 말씀을 통해 구원의 주권성과 선택의 교리를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만이 예수님의 길에 동참할 수 있으며, 그 믿음은 인간의 노력으로가 아니라 성령의 조명과 하나님의 은혜로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그 은혜의 통로이시며, 오직 그분을 통해서만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해하는 자들, 육에 속한 자들의 반응 (35–36절)

35절과 36절은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한 유대인들의 반응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서로 묻습니다.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그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이 질문은 예수님의 말씀을 철저히 인간적인 시각으로 해석한 결과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선언을 해외로 가는 여행쯤으로 이해합니다.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이라는 표현은 당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의 접촉을 의미하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연상케 합니다. 하지만 이 본문의 요지는 예수님의 의도를 전혀 깨닫지 못한 사람들의 혼란입니다. 예수님은 영적 차원의 길, 곧 죽음과 부활의 길을 말씀하셨지만, 사람들은 오직 눈에 보이는 이동만을 생각합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말씀을 접할 때도 쉽게 빠질 수 있는 오류를 보여줍니다.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 깊은 뜻을 깨닫지 못하고 표면적인 의미에만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지혜로 해석되는 책이 아닙니다. 말씀은 성령의 조명을 받아야만 진리를 보게 됩니다. 유대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성령 없이 말씀을 대하면 사람들은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따라가지 못하고, 그 의미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혼란 가운데 빠지게 됩니다.

36절에서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반복하며 의문을 되새깁니다.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이 질문은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진실성을 확인해 줍니다. 그들은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며, 영광의 자리, 하나님과의 교제의 자리에는 결코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자는 결국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인간은 그리스도를 거부하고도 하나님을 만나려 하지만, 그 길은 닫혀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는 그분이 가시는 곳, 하나님 나라에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결론

요한복음 7장 32절부터 36절까지의 본문은 예수님을 거부하고도 하나님께 이르려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보여주고,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구속사의 시간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고 있음을 증언합니다. 예수님은 그분을 믿는 자들에게는 생명의 길이요, 하나님의 임재로 나아가는 참된 길이 되시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찾을 수 없는 길, 도달할 수 없는 영광의 자리이십니다.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다시금 자문해야 합니다. 나는 그분이 가신 그 길, 곧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고 있는가? 나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아버지께 나아가고 있는가? 진정한 믿음은 바로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계시를 받아들이는 순종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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