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8:1-11 강해 음행 중에 잡혀온 여자
죄인을 위한 은혜의 자리
예수님께서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두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시험을 받으시는 이 장면은 신약 성경 전체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은혜의 장면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 본문은 단순한 용서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 그리고 인간의 죄성과 위선을 동시에 드러내는 놀라운 복음의 초상입니다. 본문 속에서 예수님은 율법을 파하지 않으시면서도, 죄인을 정죄하지 않으시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구속사의 중심을 보여주십니다.
시험하는 자들의 의도와 예수의 침묵 (1-6절)
1절은 예수께서 감람산으로 가셨다고 말하며 시작합니다. 감람산은 예수님이 자주 기도하시던 곳이자, 종말론적 메시야 사역이 성취될 장소로 상징되는 곳입니다. 2절에서 예수께서는 아침 일찍 다시 성전으로 오셨고, 많은 무리가 모여듭니다. 예수께서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라는 표현은 라삐의 전통적 가르침 자세를 따르신 것으로, 이는 예수님의 권위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입니다.
3절과 4절에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끌고 와 예수 앞에 세웁니다. 헬라어 원문은 'ἐπὶ μοιχείᾳ κατειλημένην'이라 하여 실제로 현장에서 잡힌 상태, 증거가 명백한 경우임을 강조합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절에서 그들은 시험의 본격적 의도를 드러냅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이들은 신명기 22:22 이하의 율법을 근거로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려 합니다. 예수께서 율법대로 돌로 치라고 하시면 로마법에 의해 문제가 되며, 반대로 용서하라고 하시면 모세의 율법을 부정하는 것으로 몰아가려는 것입니다. 6절 상반절은 이들의 속셈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그러나 예수님은 곧장 반응하지 않으십니다.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여기서 헬라어 'ἔγραφεν'은 미완료형으로 반복적 행동을 암시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손가락으로 기록하신 사건은 십계명을 주신 때(출 31:18)이며, 이는 지금 예수께서 율법의 저자이심을 암시합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쓰셨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이 침묵은 사람들의 양심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정죄자 없는 법정, 예수의 반문 (7-9절)
7절에서 그들이 계속해서 묻자, 예수께서는 일어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여기서 '죄 없는 자'(ἀναμάρτητος)는 단순한 법적 무죄가 아니라, 도덕적 순결과 양심의 깨끗함을 포함한 개념입니다. 즉, 예수께서는 율법을 무시하지 않으시면서도, 정죄의 기준을 단순한 행위가 아닌 심령의 상태로 끌어올리십니다. 이는 마태복음 5장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내면의 죄에 대한 기준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예수께서는 다시 몸을 굽혀 땅에 쓰셨습니다. 그분의 시선은 하늘이 아닌 땅을 향하고, 판단은 사람에게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 맡기십니다. 이때 일어난 놀라운 변화가 9절에 나타납니다.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서 있는 여자만 남았더라."
'양심에 가책을 받아'(ἐλεγχόμενοι)는 성령께서 죄를 깨닫게 하시는 사역을 연상시키는 표현입니다. 이 장면은 그 누구도 완전한 의인이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며, 율법으로는 누구도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정죄자의 자리에 있었던 이들은 결국 그 자격이 없음을 깨닫고 떠납니다.
은혜와 진리로 마주한 죄인 (10-11절)
10절은 성경에서 가장 조용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장면 중 하나입니다.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여기서 '여자여'(γύναι)는 예수께서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어머니를 부르실 때와 같은 말입니다. 존중과 따뜻함이 담긴 호칭입니다.
11절에서 여인은 대답합니다. "주여, 없나이다." 그녀는 더 이상 변명하지 않습니다. 회피도 없습니다. 그녀는 모든 소리를 들었고, 그 자리에 남았습니다. 이 사실 자체가 그녀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열렸음을 보여줍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이는 결코 죄를 묵인하거나 정당화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정죄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정죄를 대신 짊어지시기 때문입니다. 이 용서는 값싼 용서가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을 전제한 구속의 은혜입니다.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명령은 단순한 도덕적 개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새 생명을 얻은 자에게 주어지는 변화된 삶에 대한 부르심입니다. 예수님은 용서하시되, 변화 없는 삶을 방치하시지 않으십니다.
결론
요한복음 8:1-11의 이 장면은 단지 감성적인 드라마가 아닙니다. 율법의 엄중함과 복음의 은혜가 동시에 선포되는 신학적 정점입니다. 죄인을 정죄하려는 종교적 열심과, 그 죄인을 감싸 안으시되 결코 죄를 미화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은혜가 충돌하는 자리입니다.
이 본문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느 자리에 서 있는가? 율법의 잣대를 들고 타인을 정죄하는 자리에 있는가, 아니면 주님의 발 앞에서 은혜를 갈망하며 서 있는가? 죄의 고발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참된 회복은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손에 돌을 들기 전에, 우리의 마음에 있는 죄를 먼저 바라봐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죄인을 부르십니다. 그러나 그 부르심은 변화를 전제로 합니다. 용서와 함께 오는 거룩함의 부르심, 그것이 복음의 진정한 능력입니다. 오늘 우리가 다시 이 은혜의 현장에서 주님을 만난다면, 우리 역시 돌을 내려놓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