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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묵상, 시편10편 숨어 계신 하나님

  숨어 계신 듯한 하나님께 부르짖는 믿음 오늘도 말씀 앞에 조용히 앉습니다. 시편 10편은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에 드리는 탄식입니다. 악인은 교만하게 약한 자를 압제하고, 하나님이 보지 않으신다고 말하며, 자기 욕망을 신처럼 섬깁니다. 그러나 시인은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께 호소하며, 마침내 고아와 압제당하는 자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왕을 고백합니다. 오늘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며, 믿음은 하나님의 침묵처럼 보이는 시간에도 악을 악이라 부르고, 약한 자의 눈물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며, 영원한 왕이신 여호와의 공의를 기다리는 것임을 배웁니다. 멀리 계신 듯한 하나님 앞에서도 믿음은 질문을 멈추지 않습니다 (시 10:1-4) 시편 10편은 매우 솔직한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저는 이 첫 문장 앞에서 오래 머물게 됩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질문합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묻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들으시지 않는다고 확신했다면 부르짖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이 계신 줄 알기에 묻습니다. 하나님이 의로우신 줄 알기에 탄식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는 분임을 알기에, 지금의 침묵이 더 아프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신앙의 실패가 아닙니다. 성경은 믿음의 사람에게 언제나 고요하고 단정한 언어만 허락하지 않습니다. 시편은 우리의 신앙이 때로 질문으로, 때로 울음으로, 때로 견딜 수 없는 침묵 앞의 탄식으로 표현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어찌하여”라는 질문은 하나님을 심판하려는 교만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 붙어 있으려는 믿음의 몸부림일 수도 있습니다. 시편 10편의 질문은 후자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려고 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묻습니다. “멀리 서신다”는 표현은 하나님이 실제로 공간적으로 멀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