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7:10–13 감춰진 진리, 드러나는 구속의 때
감춰진 진리, 드러나는 구속의 때
유대인의 초막절이라는 큰 절기를 배경으로, 예수님은 세상의 증오와 갈등 속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십니다. 요한복음 7장 10절부터 13절은 겉으로는 단지 예수님의 예루살렘 방문 장면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의 주권과 구속사의 섭리가 깊이 담겨 있습니다. 이 본문은 겉과 속, 인간의 판단과 하나님의 뜻 사이에서 일어나는 긴장과 은혜를 보여주고 있으며, 신자의 삶 속에 임하는 하나님의 방식에 대해 깊이 묵상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시간 속에 움직이시는 예수님 (7:10)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에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은밀히 가시니라"
예수님은 초막절 절기에 유대로 올라가시지만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은밀히 올라가십니다. 앞선 6절과 8절에서 예수님은 아직 자신의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한 일정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정하신 때를 따라 움직이심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순간도 자신의 뜻이나 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걸어가십니다.
"은밀히 가시니라"는 표현은 단순한 숨어서 이동하셨다는 뜻을 넘어, 메시아로서의 사역이 아직 공개될 때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는 요한복음 전반에 흐르는 '때'의 신학과 연결됩니다. 예수님의 때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정하신 십자가의 때, 영광의 때이며, 그 전까지는 사람들 사이에 드러나지 않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즉시 드러나는 응답이나 현시적 성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은밀한 길로 인도하시고, 인간의 시간표가 아닌 하나님의 카이로스에 따라 일하십니다. 예수님의 은밀한 발걸음은 바로 그 카이로스의 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따라야 할 길도 바로 그 길입니다.
세상의 시선과 여론 속의 진리 (7:11–12)
"명절 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 하고 예수에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한다 하나"
초막절이라는 유대 최대의 절기 중 하나에서 사람들은 예수를 찾습니다. 여기서 "유대인들"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민족 집단이 아니라 예수를 대적하던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체포하거나 해하려는 의도로 찾고 있었고, 이들은 이미 자기 의와 전통으로 예수님을 판단하고자 했습니다.
한편, 무리들 사이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오갑니다. "좋은 사람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무리를 미혹한다"는 비판이 공존합니다. 이것은 복음 앞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인간의 반응입니다. 누구는 예수님의 인격과 행위를 통해 선함을 보지만, 또 누구는 그 가르침이 기존의 질서를 해친다고 생각합니다. 본문은 이러한 혼란을 단순히 정보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신령한 진리를 볼 수 있는 영적 눈이 없기 때문임을 드러냅니다.
예수님에 대한 판단은 늘 분열을 일으킵니다. 복음은 진리이기에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생명이 되지만, 거부하는 자에게는 심판이 됩니다. 이처럼 복음은 중립이 없고, 언제나 분명한 선택을 요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다수의 의견이나 여론에 흔들려 판단하기 일쑤입니다. 오늘날에도 진리는 여전히 분열을 낳습니다. 하지만 그 진리 앞에서 우리는 사람의 평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두려움 속의 침묵, 진리를 외면한 시대 (7:13)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에 대하여 말하는 자가 없더라"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지만, 아무도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유대인들, 즉 당시의 종교 권력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알고 있었지만 말하지 않았고, 의로움을 느꼈지만 고백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 장면은 마치 구약의 예언자들이 진리를 외칠 때마다 핍박받았던 상황을 연상케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두려움이 얼마나 강력한 억제력으로 작용하는지를 봅니다. 죄와 죽음의 세력은 사람의 입을 막고, 진리 앞에서도 침묵하게 만듭니다. 이것은 단순한 겁쟁이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적 타락과 무력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본문은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죄, 곧 방관의 죄를 돌아보게 합니다.
현대 사회 역시 동일한 패턴을 따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조차도, 진리에 대한 선포가 정치적 올바름이나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움츠러들고 있는 현실은 본문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는 침묵의 자리에 머물 수 없습니다. 진리는 고백되어야 하며, 어떤 두려움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선포되어야 합니다.
결론: 하나님의 때, 드러나지 않음의 은혜
요한복음 7장 10절부터 13절은 단지 한 사건의 묘사를 넘어, 하나님의 뜻과 시간 속에서 행하시는 예수님의 섭리적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요청이나 위협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때에 맞춰 은밀히 행하십니다. 그리고 그 은밀함 속에서도 사람들은 진리와 싸우며 혼란에 빠지고, 두려움에 침묵합니다.
이 본문은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는가? 여론과 압박 속에서 진리를 붙들 수 있는가? 은밀한 길을 걷는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를 신뢰할 수 있는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그 본을 따라 우리도 하나님의 때에 순종하고, 진리를 드러내며, 두려움을 이기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는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