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7:14–24 초막절 중간에 성전에 올라가 가르치심

 

겉모습을 넘어서 진리를 판단하라

예수님께서 초막절 중간에 성전에 올라가 가르치시는 장면은 단순한 교훈 전달이 아닙니다. 이 장면은 진리의 본질과 권위, 그리고 인간의 외식적인 판단을 폭로하는 영적 전쟁의 현장입니다. 요한복음 7장 14절부터 24절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것을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참된 판단이라 할 수 있는지를 깊이 성찰하게 합니다.

하늘로부터 난 가르침의 권위 (7:14–17)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그를 아느냐 하니"

초막절 중반, 예수님은 드디어 공개적으로 성전에 나타나 가르치기 시작하십니다. 이것은 단지 교육적 활동이 아니라, 메시아로서의 선언이자 영적 권위의 드러남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놀랍니다. 그들의 놀라움은 단순히 예수님의 지식의 양이나 말솜씨 때문이 아니라, 그가 공식적인 율법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깊고 권위 있는 말씀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의문에 대해 자신의 가르침이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라고 밝히십니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의 근원이 인간의 지식이나 전통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개혁주의 관점에서 이는 말씀의 절대 권위를 확증하는 장면입니다. 곧, 진리는 인간의 학문이나 자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주시는 계시에 의해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7절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하십니다. 이는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이 단지 지적인 분석이나 논리적 해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심령에서 비롯된다는 진리를 보여줍니다. 곧,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자만이 그 진리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인간의 지성 이전에 영적 감응과 도덕적 순종이 먼저라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도덕적 무관심 속에서는 결코 드러나지 않습니다.

자기 영광과 하나님의 영광 (7:18–20)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이는 참되며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스스로 말하는 자, 곧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자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를 대조합니다. 당시 유대 사회, 특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의 해석과 율법적 경건을 자랑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높이며 하나님의 말씀조차도 자기 명예를 위한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직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말씀만을 전하십니다. 이 점에서 그분은 참되시며, 그 안에는 불의가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참된 종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배웁니다. 진리를 말하는 자는 진리 자체보다 앞서려 하지 않으며,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종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먼저 두며, 자신의 위치나 인정은 뒤로 미룹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그들의 위선을 책망하십니다.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라 하시며, 그들이 모세의 율법을 자랑하면서도 실제로는 율법의 본질을 어기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사건입니다. 그들은 외형적인 규범은 지키려 했지만, 율법의 정신, 곧 긍휼과 자비는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에 대해 무리 중 일부는 "당신은 귀신들렸도다"라고 비난합니다. 이는 진리를 마주한 인간의 전형적인 반응입니다. 자기 의에 빠져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회개하기보다 오히려 말씀을 공격합니다. 이런 모습은 오늘날 우리 안에서도 발견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지만, 그 말씀 앞에 철저히 무너지고 돌이키기보다는 오히려 말씀을 해석하고 비평하려는 태도 말입니다.

겉모양이 아닌 의로운 판단 (7:21–24)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나니...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예수님은 자신의 행위, 즉 안식일에 병자를 고친 사건에 대해 다시 언급하십니다. 당시 유대 율법은 할례를 반드시 태어난 지 여드레째 되는 날에 시행해야 했고, 그 날이 안식일일 경우에도 할례를 행했습니다. 이는 율법 안에서도 생명의 보존과 순종이 형식보다 앞서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논리를 들어 그들의 모순을 드러내십니다. 안식일에 할례를 주는 것이 가능하다면, 왜 안식일에 사람을 온전히 낫게 하는 것은 정죄받아야 합니까? 이는 그들의 판단이 공의가 아니라 외모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합니다.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는 이 말씀은 단순한 인간관계의 교훈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분별하는 모든 이에게 주시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외형, 학문, 경력, 권세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함과 겸손, 그리고 성령에 의한 분별로 세워집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 가운데 얼마나 많은 경우 외적인 것에 기준을 두고 판단하고 있습니까? 말씀을 전하는 자의 학력, 말투, 교회의 크기나 분위기, 혹은 대중적인 인기도가 그 진리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교회 안팎 모두에게 던지는 깊은 경고입니다.

결론: 진리를 바로 보려면

요한복음 7장 14절부터 24절은 예수님의 공적인 가르침 속에서 드러난 참된 권위, 그리고 그것을 판단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기준을 날카롭게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교훈을 전하시며, 진리를 아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자라고 선언하십니다. 또, 스스로 영광을 구하는 자가 아닌,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말하는 자만이 진리 안에 거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말씀을 듣고 있습니까? 진리 앞에 서는 자세는 언제나 순종과 경외의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겉모습이나 전통, 인간적인 인정이나 판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과 말씀의 본질을 붙드는 신앙이 우리 안에 세워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로 판단하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기준으로 세상을 분별하고, 진리 안에서 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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