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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의 첫 주일 예배 대표기도문(어린이 주일)

5월 첫 주일 예배 대표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만유의 주재시요 언약을 세우시고 지키시는 여호와께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2026년 5월의 첫 주일, 봄의 마지막 향기가 남아 새잎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이 계절에, 우리를 주의 전으로 불러 모으사 은혜의 보좌 앞에 서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들의 꽃은 피었다 지고, 사람의 계획은 아침 안개처럼 흩어지오나,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서며 주의 인자하심은 끊어지지 아니하니, 오늘도 그 변치 않는 사랑을 의지하여 예배의 문을 엽니다. 우리 눈을 열어 하늘의 영광을 보게 하시고, 마음을 열어 주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주님, 오늘은 어린이 주일로 지키게 하시니 더욱 감사드립니다. 주께서 “어린아이들을 내게로 오게 하라” 하시며 그들의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축복하신 주님, 우리 가운데 있는 작은 자들을 주께서 귀히 여기심을 믿습니다. 세상은 강한 자를 높이고 빠른 자를 칭찬하나, 주께서는 작은 자의 숨결을 보배로 여기시고, 연약한 믿음의 싹을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는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어린이들이 교회의 장식이 아니라, 주께서 피로 사신 교회의 다음 세대요, 하늘나라의 작은 시민들임을 고백하며, 그들을 주의 품에 올려드립니다. 그러나 주님, 찬양을 올리기 전에 먼저 우리의 죄를 고백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맡겨 주신 주의 뜻을 잊고, 그들을 축복의 통로로 섬기기보다 성취의 도구로 다루었던 교만이 있었습니다. 가정의 제단이 약해져 말씀이 식탁에서 멀어지고, 기도의 등불이 꺼져 가는데도 우리는 바쁨을 핑계 삼았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다음 세대를 위한 눈물의 기도보다 편리함을 좇았고, 사랑으로 권면하기보다 무관심으로 지나치며, 때로는 자녀들의 죄를 보면서도 내 체면을 지키려 덮어 버리기도 했습니다. 주여, 우리의 게으름과 자기중심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 주시고, 성령께서 우리의 완고한 마음을 깨뜨리사 참된 회개로 주께 돌아오게 하옵소서. 은혜...

2026년 4월 넷째주 주일 대표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만군의 여호와시요, 천지의 옥좌에 좌정하신 왕이시며, 들의 백합과 하늘의 별을 한 치 오차 없이 세우신 창조의 주를 찬송하옵나이다. 4월의 넷째 주일, 봄꽃이 지고 연둣빛 잎이 자라나는 이 때에, 우리로 하여금 주의 날을 범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은혜의 궁정으로 불러 모아 예배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은 번다한 소식과 염려로 우리 마음을 떠밀어도, 주의 말씀은 옛부터 지금까지 동일한 반석이오니, 오늘도 그 반석 위에 서서 주께 상소하듯 기도 올려 드립니다. 주님, 우리는 스스로 의롭다 말할 수 없는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지난 날들에 우리의 눈은 허영을 좇고, 우리의 혀는 급히 말하여 상처를 남겼으며, 우리의 손은 주의 뜻보다 자기 유익을 먼저 헤아렸나이다. 주의 임재 앞에 서면 부끄러움이 겨울의 그늘처럼 길게 드리우거니와, 어린 양의 피가 우리 죄를 덮는다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히 나아갑니다. 주여,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의 교만을 꺾어 주시고, 성령의 칼로 숨은 죄의 뿌리를 베어 주옵소서. 회개가 일시의 탄식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이 돌이켜 주께로 향하는 새 순종이 되게 하옵소서. 부활의 절기를 지나며 다시 고백하오니,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나신 첫 열매이시며, 우리의 칭의와 생명의 보증이 되십니다. 우리가 행한 선으로 구원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받아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는 줄 믿나이다. 그러하오니 주여, 우리를 행위의 저울로 묶지 마시고, 복음의 자유 안에서 거룩을 사모하게 하옵소서. 봄비가 마른 땅을 적시듯, 은혜의 말씀으로 우리의 심령을 적셔 새 힘을 주소서. 이제 간구하오니, 성도들의 믿음을 굳게 하옵소서. 어린 믿음은 자라게 하시고, 지친 믿음은 다시 숨 쉬게 하시며, 흔들리는 믿음은 약속의 못으로 단단히 박아 주옵소서. 세상의 인정이 우리의 면류관이 되지 않게 하시고, 주의 칭찬만을 사모하게 하옵소서. 환난 중에도 낙심치 않게 하시며, 기...

주일 예배 대표기도문 2026년 4월 셋째주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만유의 주권자이시며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 앞에 2026년 4월 셋째 주일 예배로 나아옵니다. 봄이 깊어가며 햇살이 따뜻해지고, 바람 사이로 연둣빛 생명이 번져 가는 계절에 우리를 주의 전으로 불러 모아 주님을 경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꽃이 피고 잎이 자라듯, 우리 심령에도 성령의 생기가 임하여 믿음이 자라고 소망이 견고해지게 하옵소서. 오늘 드리는 예배 가운데 우리의 마음을 주께로 정돈하시고, 하늘의 평강으로 우리의 안팎을 채워 주옵소서. 자비로우신 주님, 먼저 우리의 죄를 고백하며 엎드립니다. 우리는 부활의 은혜를 말하면서도 여전히 두려움과 염려에 쉽게 흔들렸고, 은혜로 산다 하면서도 감사보다 불평이 앞설 때가 많았습니다. 말씀을 듣고도 순종을 미루었고, 사랑을 말하면서도 가까운 이에게는 말과 태도가 거칠었습니다. 섬김을 기뻐한다 하면서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주님, 우리의 교만과 냉담과 숨은 불신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씻어 주시고, 성령께서 회개의 마음을 부어 주셔서 다시 주께로 돌이키게 하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부활 이후의 계절을 걷는 우리에게 ‘지속하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부활의 감격이 한때의 감정으로 끝나지 않게 하시고, 일상의 자리에서 더 단단해지는 신앙이 되게 하옵소서. 새싹이 비바람을 지나며 뿌리를 깊게 내리듯, 우리도 말씀과 기도 가운데 뿌리를 내려 흔들리지 않게 하시며, 성령의 열매가 삶의 습관이 되게 하옵소서. 믿음이 약해진 이에게는 다시 붙드는 손을, 소망이 흔들리는 이에게는 다시 일어설 용기를, 사랑이 식은 이에게는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은혜를 부어 주옵소서. 말씀의 하나님, 오늘 강단을 붙드셔서 말씀을 전하시는 주의 종에게 성령의 충만함과 하늘의 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선포되는 말씀이 우리의 귀에만 머물지 않고 마음을 깨우며 삶을 돌이키는 능력이 되게 하옵소서. 듣는 우리에게는 겸손과 순종을 주셔서, 말씀을 평가하는 자가 아니라 말씀 앞...

2026년 4월 둘째 주일 대표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계절과 시간을 지으시고 만유를 다스리시는 주님 앞에 2026년 4월 둘째 주일 예배로 나아옵니다. 봄빛이 한층 부드러워지고 바람에 꽃향이 실려 오는 4월의 길목에서, 우리를 주의 전으로 불러 모아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겨우내 굳어 있던 땅이 풀리고 생명이 다시 움직이듯, 우리의 마음도 주의 은혜로 풀어 주시고, 예배의 자리에서 믿음의 새순이 돋아나게 하옵소서. 오늘 이 예배 가운데 성령께서 임하셔서, 우리의 시선을 주께로 고정하시고, 하늘의 평강으로 우리의 안팎을 채워 주옵소서. 자비로우신 주님, 먼저 우리의 죄를 고백하며 엎드립니다. 우리는 주님의 선하심을 알면서도 쉽게 염려에 끌렸고, 은혜로 산다 하면서도 감사보다 불평이 앞설 때가 많았습니다. 말씀을 듣고도 순종을 미루었고, 사랑을 말하면서도 가까운 이웃에게는 말과 태도가 거칠었습니다. 예배를 드린다 하면서도 마음은 다른 곳에 빼앗길 때가 많았사오니, 주님, 우리의 교만과 냉담과 숨은 불신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씻어 주시고, 성령께서 회개의 마음을 부어 주셔서 다시 주께 돌아오게 하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다윗과 같은 믿음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다윗이 사람의 무기와 계산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여 담대히 나아갔던 것처럼, 우리도 삶의 골리앗 앞에서 두려움에 무너지지 않게 하시고, 믿음으로 한 걸음을 내딛게 하옵소서.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주셔서, 상황이 흔들려도 중심이 흔들리지 않게 하시며, 실패와 연약함 속에서도 회개로 다시 일어서는 믿음을 주옵소서. 무엇보다 다윗이 주의 마음에 합한 자로 살기를 사모했듯, 우리도 주님의 뜻을 기쁘게 따르는 순종의 길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말씀의 하나님, 오늘 강단을 붙드셔서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께 성령의 충만함과 하늘의 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말씀으로 교회를 먹이게 하시고, 선포되는 진리가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하며 삶을 돌이키는 능력...

2026년 4월 첫 주일 예배 대표기도문(부활주일)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만왕의 왕이시며 생명과 빛의 근원이신 주님 앞에 2026년 4월 첫째 주일, 부활의 기쁨으로 모여 예배드립니다. 겨울을 지나 봄의 기운이 완연하게 번져 가듯,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가 우리 심령에도 새 숨을 불어넣으심을 찬송합니다. 오늘 이 예배 가운데 성령께서 임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깨우시고 믿음을 새롭게 하시며, 부활의 소망으로 교회를 다시 일으켜 주옵소서. 자비로우신 주님, 먼저 우리의 죄를 고백하며 엎드립니다. 우리는 부활을 믿는다 하면서도 삶에서는 염려와 두려움에 더 쉽게 끌렸고, 은혜로 산다 하면서도 감사보다 불평이 앞설 때가 많았습니다. 주님이 주신 사랑으로 서로를 품기보다 판단과 비교로 마음을 닫았고, 섬김의 길보다 인정받고 싶은 욕심을 붙들었습니다. 주님, 우리의 교만과 냉담과 숨은 불신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씻어 주시고,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 안에 새 마음을 창조하여 주옵소서. 부활의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믿음의 성장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새싹이 햇빛과 비를 받아 자라듯, 우리의 믿음도 말씀과 기도로 자라게 하시고, 습관의 신앙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신앙으로 굳게 하옵소서. 낙심한 이들에게는 다시 일어설 용기를, 지친 이들에게는 새 힘을, 흔들리는 이들에게는 반석 같은 확신을 주옵소서. 부활의 주님을 바라볼 때, 우리의 과거가 죄책으로 묶이지 않게 하시고, 오늘의 상처가 절망으로 끝나지 않게 하시며, 내일이 두려움이 아니라 소망의 길로 열리게 하옵소서. 교회의 머리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여, 우리 교회에 부흥을 주옵소서. 사람의 열심만으로가 아니라 성령의 바람으로 예배가 살아나게 하시고, 찬양이 하늘에 닿게 하시며, 말씀의 선포가 죄인을 살리고 성도를 세우는 능력이 되게 하옵소서. 예배가 형식이 되지 않게 하시고, 회개와 감사와 결단이 살아 있는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새가족의 발걸음을 인도하시고,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전도의 열매를 주시며, 교회가 세상 속에서...

종려주일(Palm Sunday)의 성경신학적 의의와 교훈

  성경적·구속사적 의미, 신학적 해석, 현대적 의의 1. 종려주일의 정의와 위치 종려주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메시아적 입성”을 하신 사건을 기념하는 주일이며, 교회력으로는 부활주일(Easter) 직전의 주일이자 고난주간(Holy Week)의 문을 여는 날이다. “종려(棕櫚)”라는 이름은 무리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수를 환영한 장면에서 비롯된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이 날을 왕의 도성에 들어오시는 왕이자, 동시에 십자가로 나아가시는 고난의 종이신 그리스도의 역설(paradox)을 함께 묵상한다. 이 날은 환호와 비극, 승리와 수난, 왕권과 자기비움이 한 장면에 겹쳐지는 날이며, 복음서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방식이 세상의 방식과 근본적으로 다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날이다. 2. 성경적 근거: 네 복음서의 ‘입성’ 서사 종려주일 사건은 마태(21장), 마가(11장), 누가(19장), 요한(12장)에 공통적으로 전승된다. 공관복음은 나귀(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는 예수의 행보를 ‘예언 성취’와 ‘왕의 표지’를 중심으로 서술하며, 요한복음은 종려나무 가지와 “호산나” 환호를 보다 직접적으로 강조한다. 이 입성은 우연한 군중 이벤트가 아니라, 예수께서 의도적으로 ‘상징적 행위(symbolic act)’를 수행하신 사건이다. 예수는 자신이 누구인지(메시아, 다윗의 자손), 어떤 왕인지(폭력의 왕이 아닌 평화의 왕), 어떤 길로 통치하는지(십자가의 길)를 예루살렘 한복판에서 공적으로 드러낸다. 여기서 핵심은 “메시아(Messiah)의 정체가 공개적으로 표명되었다”는 점이다. 예수는 그동안 여러 장면에서 메시아적 열광을 제한하거나(이른바 ‘메시아 비밀’의 양상) 오해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예루살렘 입성에서는 오히려 예언의 상징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신다. 이는 수난과 죽음이 가까운 시점에서, 그 죽음이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구속사적 필연’이며 ‘언약의 성취’임을 공적으로 선포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참고 성구: 개역...

3월 다섯째주 주일 대표기도문(종려주일)

우리의 아픔과 슬픔을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 만왕의 왕이시며 역사의 주권자 되시는 주님 앞에 2026년 3월 마지막 주일, 종려주일 예배로 나아옵니다. 봄빛이 짙어지고 새 잎이 돋아나는 이 계절에, 주께서 우리를 성일의 자리로 불러 모아 주님을 경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는 주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외치던 그 거룩한 순간을 기억합니다. 영광의 왕이시나 세상의 방식이 아닌 겸손의 길로 오신 주님, 칼과 힘이 아니라 십자가와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주님을 경배하오니, 우리의 마음에도 참된 왕을 모시는 믿음이 새로워지게 하옵소서. 자비로우신 하나님, 먼저 우리의 죄를 고백하오니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는 입술로는 호산나를 외치되, 삶에서는 주님을 왕으로 모시지 못한 때가 많았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길이 낮아짐과 섬김의 길인 줄 알면서도, 우리는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과 비교하는 습관에 붙들려 살았습니다. 사랑받은 자로 살면서도 말은 차가웠고, 용서받은 자로 살면서도 용서를 미루었으며, 은혜로 살면서도 감사가 옅어졌습니다. 주님, 우리의 교만과 냉담과 숨은 불신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사오니,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이 씻어 주옵소서. 성령께서 우리의 심령을 비추사 진실한 회개로 돌이키게 하시고, 다시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로 세워 주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종려주일을 맞아 우리의 신앙을 깊게 하옵소서. 종려가지의 환호가 잠시의 감정으로 끝나지 않게 하시고, 고난주간의 침묵과 성금요일의 십자가까지 끝까지 주님과 동행하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걸어가신 길이 영광을 얻기 위한 길이 아니라 죄인을 살리기 위한 길이었음을 기억합니다. 주님, 우리가 십자가의 길을 두려워하여 피해 가지 않게 하시고, 회개의 길을 미루지 않게 하시며, 복음의 능력 앞에 마음을 낮추게 하옵소서. 우리의 절제와 기도와 말씀 묵상이 형식이 되지 않게 하시고, 죄를 미워하고 거룩을 사모하는...

2026년 3월 29일 셋째 주일 예배 대표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만왕의 왕이시며 역사의 주권자 되시는 주님 앞에 2026년 3월 29일, 3월 다섯째 주일 예배로 나아옵니다. 봄빛이 짙어지고 바람에 새 잎의 기운이 묻어나는 이 때에, 우리를 성일의 자리로 부르셔서 주님을 경배하게 하시니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오늘은 주께서 겸손히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백성들이 “호산나” 외치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던 날을 기억합니다. 어린 나귀를 타신 왕이신 주님, 세상의 힘과 자랑을 내려놓고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시는 주님을 우러러 경배하오니, 우리의 마음에도 참된 왕을 모시는 믿음을 새롭게 하옵소서. 자비로우신 주님, 먼저 우리의 죄를 고백하오니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는 입술로는 호산나를 외치되 마음은 쉽게 변하여, 순종보다 편안함을 택하고, 십자가보다 영광을 먼저 구하였습니다. 주님의 길이 낮아짐과 섬김의 길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심과 비교하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사랑받은 자로 살면서도 말은 거칠었고, 용서받은 자로 살면서도 용서에 인색하였습니다. 주님, 우리의 교만과 냉담과 숨은 불신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사오니,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이 씻어 주옵소서. 성령께서 우리 심령을 비추사 진실한 회개로 돌이키게 하시고, 다시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로 세워 주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사순절의 끝을 향해 나아가며 고난주간을 앞두고 있는 이 시기에, 우리를 더욱 깊이 복음의 중심으로 이끌어 주옵소서. 주님의 고난이 단지 슬픈 이야기가 아니라 죄인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믿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채찍을 맞으시고 조롱을 받으시며 십자가를 지셨으니, 우리의 구원은 오직 은혜요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니 주님, 우리에게 값싼 위로가 아니라 거룩한 변화의 은혜를 주옵소서. 미움과 탐심과 헛된 말과 쓸데없는 분주함을 비우게 하시고, 기도와 말씀 묵상과 이웃 사랑으로 채우게 하옵소서. 말씀의 하나님, 오늘 강단을 붙드사 주의 종에게 성령의 충만함과 하늘...

2026년 3월 22일 넷째 주일 대표기도문(사순절)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만유의 주권자 되시며 계절과 시간을 다스리시는 주님 앞에 3월 넷째 주일 예배로 나아옵니다. 봄빛이 짙어지고 새싹이 돋아나는 이 계절에, 주께서 우리 심령에도 새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고 믿음의 새순을 자라게 하심을 찬송합니다. 지난 한 주의 걸음을 지키시고 오늘 거룩한 성일에 우리를 불러 주셨으니, 우리의 마음을 주께로 정돈하시고 하늘의 평강으로 채워 주옵소서. 자비로우신 주님, 먼저 우리의 죄를 고백하며 엎드립니다. 우리는 사순절의 길을 걷는다 하면서도 십자가 앞에 오래 머물지 못했고, 회개보다 변명에 익숙하였습니다. 사랑을 말하면서도 말이 거칠고 마음이 차가웠으며, 받은 은혜를 기억한다 하면서도 감사는 쉽게 옅어졌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 하면서도 내 뜻과 내 자존심을 먼저 세우려 했던 우리의 교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씻어 주시고, 성령께서 마음을 찢는 회개를 허락하셔서 다시 복음의 중심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사순절의 시간 속에서 우리의 신앙을 깊게 하옵소서. 주님의 고난을 묵상할 때 죄의 무게를 깨닫게 하시고, 그 죄를 덮는 은혜의 크기를 더 분명히 보게 하옵소서. 절제와 기도와 말씀 묵상이 형식이 되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삶을 바꾸는 능력이 되게 하옵소서. 비워야 할 것을 비우게 하시고, 채워야 할 것을 채우게 하셔서, 미움 대신 사랑을, 조급함 대신 인내를, 두려움 대신 믿음을 선택하게 하옵소서. 말씀의 하나님, 오늘 강단을 붙드셔서 말씀을 전하시는 주의 종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더하여 주옵소서. 선포되는 말씀이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며, 길 잃은 발걸음을 돌이키는 능력이 되게 하옵소서. 듣는 우리에게는 겸손과 순종을 주셔서, 말씀을 평가하는 자가 아니라 말씀 앞에 순복하는 자가 되게 하시며, 오늘 들은 말씀이 한 주의 삶으로 이어져 열매 맺게 하옵소서. 교회의 머리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여, 주의 몸 된 교회를 긍휼히 여기소서. 교회가 세...

2026년 3월 15일 셋째 주일 대표기도문

하나님 아버지, 만유의 주권자이시며 계절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님 앞에 3월 셋째 주일 예배로 나아옵니다. 겨울의 끝을 지나 봄의 기운이 골목과 들판에 스미는 이때, 주께서 우리의 심령에도 새 숨을 불어넣으시고 믿음의 새순을 돋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연약한 우리를 주의 전으로 불러 모아 예배하게 하시고, 말씀과 기도로 다시 살아나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찬송합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의 마음을 주께로 정돈하시고, 하늘의 평강으로 우리의 안팎을 채워 주옵소서. 자비로우신 주님, 먼저 우리의 죄를 고백하며 엎드립니다. 우리는 사순절의 길을 걷는다 하면서도 십자가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고, 회개의 눈물보다 습관의 예배로 만족할 때가 많았습니다. 주님의 고난을 말하면서도 정작 가까운 이웃의 아픔에는 무심했고, 사랑을 말하면서도 말과 태도는 차갑고 거칠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 하면서도 내 나라, 내 뜻, 내 체면을 먼저 세우려 했던 우리의 교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를 씻어 주시고, 성령께서 마음을 찢는 회개를 주셔서 다시 복음의 중심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사순절의 시간 속에서 우리를 깊이 다루어 주옵소서. 십자가의 길이 단지 절기의 분위기가 아니라, 죄인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다시 깨닫게 하시고, 주님의 낮아지심 앞에서 우리의 교만이 무너지게 하옵소서. 금식과 절제의 의미를 바르게 알게 하시며, 음식만이 아니라 미움과 탐심과 헛된 말과 쓸데없는 비교를 내려놓게 하옵소서. 비워진 자리에는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과 기도의 무릎, 이웃을 향한 긍휼을 채워 주옵소서. 주님, 우리를 주님 닮은 사람으로 빚어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봄이 오면 묵은 가지를 정리하고 새순을 맞이하듯, 교회와 우리 가정이 영적으로 정돈되는 은혜를 주옵소서. 특별히 춘계 대심방을 앞두고, 가정마다 주님의 평강이 임하게 하시며, 목회자의 발걸음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심방의 시간이 형식이 되지 않게 하시고, 말씀과 기도로 마음의 문이 열...

2026년 3월 1일 첫주 주일 대표기도문

역서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 만세 전에 계시고 오늘도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 앞에 3월 첫 주일, 삼일절 기념주일로 우리를 불러 모아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겨울의 끝을 지나 봄의 문턱에 서게 하신 주님, 얼어 있던 땅이 풀리듯 우리의 마음도 주의 은혜로 풀어 주시고, 새순이 오르듯 믿음의 새 마음이 우리 안에 돋아나게 하옵소서. 바람은 아직 차갑고 세상은 여전히 소란하오나, 우리를 붙드시는 주님의 손은 변함없사오니 오늘 이 예배 가운데 하늘의 평강을 부어 주옵소서. 자비로우신 주님, 먼저 우리의 죄를 고백하며 엎드립니다. 우리는 은혜로 살면서도 감사가 옅어졌고, 기도한다 하면서도 염려를 더 크게 품었습니다. 사랑받은 자로 살면서도 이웃을 쉽게 판단했고, 용서받은 자로 살면서도 마음에 미움을 오래 두었습니다. 나라와 공동체의 아픔을 말하면서도 내 삶의 편안함만을 구한 이기심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 우리의 숨은 교만과 탐심과 무관심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씻어 주시고, 성령께서 새 마음을 주셔서 회개의 걸음으로 다시 주께 돌아가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오늘은 삼일절을 기억하는 주일입니다. 민족이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해 일어서던 그날의 마음을 주님 앞에 올려드립니다. 이름 없는 이들의 눈물과 기도, 믿음과 용기, 그리고 정의를 향한 간절한 외침을 기억하게 하시고, 그 뜻이 단지 과거의 기념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양심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이 땅에 자유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우리가 누리는 평안이 저절로 온 것이 아님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 대한민국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갈라진 마음들이 미움의 말로 깊어지지 않게 하시고, 서로의 상처를 헤아리는 성숙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지도자들에게는 공의와 지혜를 주시고, 책임 있는 결단으로 백성을 섬기게 하시며, 거짓과 편가르기가 나라의 기초를 무너뜨리지 못하게 하옵소서. 경제의 어려움과 불안 속에 있는 가정들에게는 필요한 길...

2026년 3월 8일, 삼월 둘째 주일 대표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계절을 지으시고 우리의 때를 정하시는 주님 앞에 3월 둘째 주일 예배로 나아옵니다. 겨울의 차가움이 물러가고 봄빛이 조금씩 번져 가는 이때에, 우리 삶에도 새 시작을 허락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찬송합니다. 땅이 풀리며 새싹이 오르듯, 굳어 있던 마음이 주의 사랑으로 풀어지고 믿음의 새순이 돋아나게 하옵소서. 오늘 이 예배 가운데 우리의 시선을 분주한 세상에서 돌려, 오직 주님께로 향하게 하시고, 하늘의 평강으로 우리의 안팎을 채워 주옵소서. 자비로우신 주님, 먼저 우리의 죄를 고백하며 엎드립니다. 우리는 새 출발을 말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는 두려움과 염려를 더 크게 품었고, 주님의 약속을 붙든다 하면서도 현실의 계산에 더 쉽게 끌렸습니다. 사랑받은 자로 살면서도 말이 거칠어져 이웃의 마음을 상하게 했고, 용서받은 자로 살면서도 용서에 인색했습니다. 주님, 우리의 교만과 무관심과 나태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를 씻어 주시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새 마음을 주셔서 진실한 회개와 순종의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3월의 시작과 함께 입학과 새 학기를 맞이하는 자녀들을 주께 올려드립니다. 낯선 교실과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규칙과 새로운 기대 앞에 서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주께서 아시오니, 주님께서 친히 동행하여 주옵소서. 두려움에 눌리지 않게 하시고, 배움의 기쁨을 주시며, 선한 관계를 맺게 하시고, 폭력과 따돌림과 유혹에서 지켜 주옵소서. 공부의 성취만을 좇느라 마음이 메마르지 않게 하시고,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배우게 하옵소서. 또한 진학과 진로를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분별을 주셔서, 세상의 기준만 따르지 않게 하시고, 주께서 주신 은사와 소명을 발견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 받게 하옵소서. 새 직장과 새 부서로 옮기는 성도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이들에게도 지혜와 담대함을 주셔서, 성실함과 정직함으로 신뢰를 세우게 하옵소서. 주님, 봄이 오면 묵은...

2026년 2월 주일 대표기도문 모음, 첫째주, 둘째주, 셋째주, 넷째주 기도문

 2월 주일 낮 예배 대표기도문 모음 2월 첫째주 주일 대표기도문 하나님 아버지, 만왕의 왕이시며 역사의 주권자 되시는 주님 앞에 2026년 2월 첫째 주일, 주께서 정하신 성일의 예배로 나아옵니다. 하늘의 보좌에 앉으시되 낮은 자의 탄식을 들으시는 하나님, 눈에 보이는 세상 권세보다 크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오늘도 흔들림 없음을 믿고 찬송합니다. 우리의 시간과 계획이 주님 앞에서 잠깐일 뿐이오나, 주께서 이루시는 나라는 영원하며 의와 평강과 기쁨으로 충만함을 고백합니다. 주님,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 부르심을 받았으나 우리의 마음은 자주 세상의 나라를 닮았습니다. 더 가지려는 욕심, 더 높아지려는 교만, 더 안전해지려는 두려움이 우리를 다스렸고,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통치를 기쁨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내 뜻의 성을 쌓아 올리려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죄를 자복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 안의 왕좌를 내려놓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이 왕이심을 인정하는 회개의 마음을 부어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나라가 우리의 공로로 세워지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순종과 은혜로 우리에게 임했음을 찬송합니다. 주께서 왕 되셔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꺾으셨고, 부활로 새 창조의 문을 여셨사오니, 오늘도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임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현실을 맛보게 하옵소서. 말씀이 선포될 때 우리의 생각이 새로워지고, 찬양이 울려 퍼질 때 낙심이 물러가며, 기도가 올려질 때 두려움이 평강으로 바뀌게 하옵소서. 우리의 예배가 이 땅의 염려를 잠시 잊는 위안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로 다시 정렬되는 거룩한 재정비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살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의를 사랑하는 마음을 주셔서 거짓과 타협을 멀리하게 하시고, 평화를 이루는 마음을 주셔서 갈등 속에서도 화해의 길을 찾게 하시며, 기쁨을 주셔서 상황이 아니라 복음으로 웃게 하옵소서.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 나라의 작은 모형이 되게 하시고, 부부의 말과 태...

로마서 16장 주해적 묵상

  로마서 16장 주해적 묵상 이름으로 불러 세우시는 교회, 복음으로 지키시는 공동체 1. 본문 서두의 신학적 위치와 역할: 거대한 교리의 끝에서 ‘사람’으로 마무리되는 복음 로마서 16장은 로마서 전체의 결론이면서, 동시에 로마서가 결코 추상적인 교리 논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입니다. 1–11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의(δικαιοσύνη)와 믿음(πίστις)으로 말미암는 칭의(δικαιόω), 성령(πνεῦμα) 안의 새 생명, 그리고 이스라엘과 열방을 아우르는 구속사의 신비(μυστήριον)를 논증했습니다. 12–15장에서는 그 복음이 교회의 윤리와 공동체 질서, 선교적 방향으로 번역되어야 함을 권면했습니다. 그리고 16장에서는 마침내 그 모든 진리가 ‘관계’와 ‘인물’과 ‘구체적 공동체’의 자리로 내려앉습니다. 로마서 16장이 인상적인 이유는, 바울이 로마서의 정점에서 마지막을 장엄한 선언으로만 닫지 않고 수많은 이름을 부르며 편지를 끝맺는다는 데 있습니다. 복음은 교리로만 머물지 않고 사람을 세우고 공동체를 형성하며, 마침내 서로를 기억하고 환대하는 질서를 낳습니다. 바울은 이름을 부르며 복음이 만든 사회를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6장은 ‘부록’이 아니라, 로마서 전체가 지향했던 열매의 현장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성도는 홀로 남지 않고, 성령의 교제 안에서 서로를 동역자라 부르고, 고난과 사명을 함께 견디며, 거짓 가르침을 경계하고, 끝내 하나님께 영광(δόξα)을 돌립니다. 로마서 16장은 복음의 교회론적 결론이며, 예배로 수렴되는 신학의 마지막 호흡입니다. 2. 뵈뵈의 추천과 교회의 얼굴: 섬김(διάκονος)과 보호자(προστάτις)로 세워진 성도 로마서 16장은 뵈뵈의 추천으로 시작합니다. 바울은 뵈뵈를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 곧 섬기는 자(διάκονος)로 소개하며, 주 안에서 합당하게 영접하고 그가 필요로 하는 일을 도우라고 권합니다. 여기서 ‘추천’은 단지 개인 소개가 아니라, 초대교회...

로마서 15장 주해적 묵상

  로마서 15장 주해적 묵상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한 길로 열방을 향하여 1. 본문 서두의 신학적 위치와 역할: 공동체 권면의 절정에서 선교적 마침으로 로마서 15장은 로마서 전체 흐름에서 매우 독특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12장부터 시작된 윤리적 권면은 14장에서 ‘강한 자와 약한 자’의 갈등을 다루며 공동체의 일치를 구체적으로 요청했고, 15장은 그 요청을 더 높은 신학적 지평으로 끌어올려 마무리합니다. 다시 말해, 15장은 단지 “서로 배려하라”는 사회적 조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이 교회를 어떤 공동체로 빚는지, 그리고 그 공동체가 어떻게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사적 목적 안에 서는지를 보여 주는 결론부입니다. 특히 15장은 두 방향을 동시에 향합니다. 하나는 교회 안을 향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고 공동체가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치에 이르도록 촉구합니다. 다른 하나는 교회 밖을 향해, 바울 자신의 사도적 사명과 선교 계획을 드러내며 로마 교회가 열방 선교의 동역자가 되도록 초대합니다. 이 둘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바울에게 교회의 일치는 선교를 위한 전략이기 이전에 복음의 실체이며, 선교는 일치의 결과이기 이전에 복음의 본질입니다. 로마서 15장은 이 두 사실을 한 호흡으로 묶어, 교회가 ‘서로를 세우는 공동체’이면서 동시에 ‘열방을 향해 보내심 받은 공동체’임을 선언합니다. 2. 핵심 주제의 성경신학적 의미: 그리스도의 자기부정과 성경의 소망 2.1 강한 자의 부르심: 담당함(βαστάζω)은 은혜의 성숙한 형태입니다 바울은 “강한 자는 마땅히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βαστάζειν)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강함’은 단순한 성격의 강인함이 아니라, 음식과 절기 문제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신앙의 여유를 뜻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강함을 ‘권리의 증명’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강함은 책임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담당함은 상대의 성장을 위한 짐을 함께 지는 행...

로마서 14장 주해적 묵상

  로마서 14장 주해적 묵상 판단을 내려놓고 서로를 세우는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 1. 본문 서두의 신학적 위치와 역할: 복음 윤리가 공동체의 갈등으로 들어오는 지점 로마서 14장은 로마서 12장부터 이어지는 삶의 권면이 가장 구체적인 교회 현실과 맞닿는 자리입니다. 12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모든 긍휼”을 근거로 몸을 산 제사로 드리는 예배를 말했고, 13장에서 공적 질서 속에서 사랑의 빚을 지며 종말론적 각성으로 깨어 살라고 권면했습니다. 14장에서는 그 권면이 교회 내부의 실제 갈등, 곧 신앙의 강함과 약함, 음식과 절기 같은 생활 규범의 차이로 인해 공동체가 서로를 판단하고 배제하는 문제로 이어지는 현장을 다룹니다. 이 장의 신학적 위치는 중요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말할 때 교회의 일치를 추상적 구호로 다루지 않습니다. 교회의 일치는 곧 예배의 문제이며, 구원의 열매이며, 하나님 나라의 표지입니다. 로마 교회는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가 함께 있었고, 어떤 이는 율법적 전통에 익숙해 특정 음식과 절기를 신앙의 안전장치로 삼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반대로 어떤 이는 복음의 자유를 깊이 경험하여 그러한 규정을 부담으로 느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4장은 이 차이를 “정답을 맞히는 토론”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복음이 교회의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 재구성하는지 보여 줍니다. 그래서 14장은 교리의 부록이 아니라, 교리가 공동체의 공기와 말투와 판단 습관을 어떻게 바꾸는지 드러내는 현장 신학입니다. 2. “믿음이 연약한 자”(ἀσθενής)를 받으라: 공동체의 첫 태도는 논쟁이 아니라 환대입니다 바울은 “믿음이 연약한 자(ἀσθενής)를 받으라(προσλαμβάνεσθε)”고 말하며 시작합니다. 받으라는 동사는 단순히 “모임에 들어오게 하라”는 허용이 아니라, 공동체 안으로 끌어안아 동료로 인정하라는 적극적 환대를 뜻합니다. 바울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먼저 “누가 맞는가”를 묻지 않고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묻습니다. 이는 교회론적으로 결정...

로마서 13장 주해적 묵상

  로마서 13장 주해적 묵상 그리스도인의 공적 삶과 사랑의 빚, 그리고 깨어 있는 종말의 윤리 1. 본문 서두의 신학적 위치와 역할: 복음의 윤리가 공적 세계로 나아가는 자리 로마서 13장은 로마서 12장부터 이어지는 권면 단락의 한가운데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개인의 경건과 교회 내부의 관계를 넘어 공적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함을 보여 주는 핵심 본문입니다. 12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모든 긍휼”을 근거로 몸을 산 제사로 드리는 예배를 말했고, 공동체 안에서 은사와 사랑의 질서를 세우며, 원수에게도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권면했습니다. 13장은 바로 그 흐름을 이어받아,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에 맡기는 삶이 공공 질서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사회적 책임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밝힙니다. 특히 로마서 13장은 두 개의 큰 축으로 구성됩니다. 하나는 13:1-7에서 권세(ἐξουσία)와 국가 권력, 세금과 공적 의무를 다루는 부분입니다. 다른 하나는 13:8-14에서 사랑(ἀγάπη)과 율법(νόμος)의 성취, 그리고 종말론적 긴박감 속에서 깨어 살라는 권면을 다루는 부분입니다. 이 두 축은 분리된 주제가 아니라 하나의 복음적 윤리로 연결됩니다. 바울이 말하는 복음은 내면의 구원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이 땅의 질서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까지 포괄합니다. 로마서 13장은 그 포괄성을 가장 구체적인 언어로 보여 줍니다. 2. 권세(ἐξουσία)와 하나님의 섭리: 복종(ὑποτάσσω)은 우상숭배가 아니라 질서에 대한 신앙적 응답입니다 2.1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 주권의 공적 차원 바울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ἐξουσίαις ὑπερεχούσαις)에게 복종하라”고 말하며,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고, 있는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τεταγμέναι)라”고 선언합니다. 이 말은 국가 권력이 언제나 의롭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 질서 안에서 무질서...

로마서 12장 주해적 묵상

  로마서 12장 주해적 묵상 긍휼의 복음이 몸으로 드러나는 예배가 됩니다 1. 본문 서두의 신학적 위치와 역할: 찬양에서 삶으로, 교리에서 예배로 로마서 12장은 로마서 전체의 흐름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입니다. 1–11장에서 바울은 죄 아래 있는 인류의 현실과 하나님의 의(δικαιοσύνη), 믿음(πίστις)으로 말미암는 칭의(δικαιόω), 성령(πνεῦμα) 안의 새 생명, 그리고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아우르는 구속사의 신비(μυστήριον)를 펼쳐 보였습니다. 11장이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라는 찬양으로 끝나는 것은, 바울의 신학이 단순한 논리 체계가 아니라 예배로 수렴하는 진리임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12장은 그 예배가 이제 교회와 성도의 삶으로 번역되어야 함을 선언합니다. 바울은 “그러므로”라는 접속어로 시작합니다. 이는 신앙 윤리가 도덕적 결심에서 출발하지 않고, 하나님이 이미 이루신 구원의 긍휼에서 출발함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권면하는 삶은 복음을 대체하는 또 하나의 길이 아니라, 복음이 만들어 내는 필연적 열매입니다. 따라서 로마서 12장은 구원론의 부록이 아니라, 구원이 어떤 인간을 만들어 내는지 보여 주는 구원의 실체입니다. 교회론적으로도 이 장은 중요합니다. 바울은 개인의 경건을 넘어 몸 된 공동체의 질서를 말하며, 그 공동체가 세상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존재해야 하는지, 곧 복음이 사회적 관계와 일상의 습관을 어떻게 바꾸는지까지 다룹니다. 2. “하나님의 모든 긍휼”(οἰκτιρμοί)과 권면(παρακαλέω): 은혜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한 명령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모든 긍휼(οἰκτιρμοί)”을 근거로 “권하노니”(παρακαλέω)라고 말합니다. 이 권면은 단순한 훈계가 아니라, 복음이 낳는 초청입니다. 긍휼은 바울이 9–11장에서 끝까지 붙들었던 단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불순종 가운데 갇힌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셨고, 그 긍휼은 이방인과 유대인 모두를 살리는 방식으로 나타났습니다. 12장의 윤리는 ...

로마서 11장 주해적 묵상

  로마서 11장 주해적 묵상 : 남은 자와 접붙임, 그리고 긍휼로 닫히지 않는 언약 1. 본문 서두의 신학적 위치와 역할: 9–11장의 마침표이자 12장의 문턱 로마서 11장은 9–11장 전체 논의의 결론입니다. 9장에서 바울은 이스라엘의 불신앙이라는 비극 앞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긍휼(ἔλεος)을 붙들며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이 아니다”라는 토대를 세웠고, 10장에서 구원의 길이 행위가 아니라 믿음(πίστις)이며 그 믿음이 들음(ἀκοή)과 전파를 통해 일어난다는 복음의 현재성을 밝혔다면, 11장은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셨는가”라는 질문에 최종 대답을 내놓습니다. 동시에 이 장은 12장 이후의 윤리적 권면으로 넘어가기 직전, 교회가 어떤 하나님을 믿고 어떤 방식으로 한 몸이 되는지를 다시 정리합니다. 11장의 결론이 없다면 12장의 “그러므로”(οὖν)는 공중에 뜹니다. 바울에게 교회의 삶은 도덕적 결심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를 어떻게 이끄시는지에 대한 경외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1장은 개인의 영적 확신을 다루는 장에 머물지 않습니다. 이방인과 유대인이 함께 있는 로마 교회가 실제로 직면한 문제를 붙들고, 그 문제를 성경신학적 지평에서 해석합니다. 이방인 신자에게는 교만(ὑψηλοφρονέω)을 경계하게 하고, 유대인 신자에게는 절망과 수치 속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πιστός)을 다시 보게 합니다. 그리고 교회 전체에게는 복음이 인간의 계산을 넘어 하나님의 긍휼로 완성된다는 사실을 다시 새겨 줍니다. 이 장의 마지막에 터져 나오는 찬양은 논리의 끝에서 생기는 감탄이 아니라, 구속사 앞에서 무릎 꿇는 예배의 결론입니다. 2.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남은 자(λεῖμμα)로 증명되는 신실하심 2.1 바울 자신이 증거가 된다: 버림이 아니라 보존의 역사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그리고 그 근거로 자기 자신을 듭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이며 베냐민 지파라고 밝힙니다. ...

로마서 10장 주해적 묵상

  로마서 10장 주해적 묵상 : 믿음의 의와 들음의 길, 주의 이름을 부르는 공동체 1. 본문 서두의 신학적 위치와 역할: 9–11장의 중심부에서 “구원의 길”을 다시 밝히다 로마서 10장은 9–11장이라는 큰 단락 한가운데에 놓여 있습니다. 9장이 이스라엘의 불신앙 앞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긍휼(ἔλεος)을 말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이 아니다”라는 구속사적 토대를 세웠다면, 10장은 그 토대 위에서 “그렇다면 구원은 어떤 길로 주어지는가”를 가장 직접적으로 설명합니다. 11장이 다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미래의 소망과 경계의 권면으로 이어질 때, 10장은 현재의 자리에서 이스라엘과 이방인 모두에게 동일하게 열려 있는 복음의 길을 분명히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8장의 확신 선언 이후 9장에 갑작스러운 눈물이 등장했던 것처럼, 10장도 바울의 목회적 심장에서 시작됩니다. 바울은 논증을 이기기 위해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구속사의 난제를 다루면서도, 그 난제가 한 민족의 실제적인 상처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10장은 신학의 언어와 목회의 언어가 가장 자연스럽게 만나는 장입니다. 이 장을 통과하면 독자는 한 가지를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숙명이 아니라, 복음 선포와 믿음의 응답을 통해 실제로 역사 속에서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방식이라는 사실입니다. 2. 바울의 목회적 마음과 이스라엘의 비극: 열심(ζῆλος)은 있으나 지식(ἐπίγνωσις)이 없다 2.1 구원을 향한 간구: 논쟁보다 앞서는 중보의 자리 바울은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비는 바”가 이스라엘의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바울의 태도는 두 극단을 막아 줍니다. 하나는 냉소입니다. “저들은 이미 끝났다”는 체념입니다. 다른 하나는 정죄입니다. “저들은 나쁜 사람들이다”라는 단순화입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심각하게 말하지만, 그들을 향한 태도는 끝까지 간구입...

로마서 9장 주해적 묵상

  로마서 9장 주해적 묵상 : 하나님의 주권과 긍휼, 그리고 언약의 깊은 신비 1. 본문 서두의 신학적 위치와 역할: 확신의 절정에서 이스라엘의 고통으로 로마서 9장은 로마서 전체 논증에서 가장 긴장감이 큰 전환점입니다. 8장에서 바울은 성령(πνεῦμα) 안에 있는 자에게 정죄함(κατάκριμα)이 없고,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의 사랑(ἀγάπη)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고 선언하며 확신의 봉우리에 서게 했습니다. 그런데 곧바로 9장에서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바울은 자기 동족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그로 인한 구속사적 비극을 두고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을 말합니다. 이 급격한 전환은 로마서가 단지 개인의 구원 확신을 다루는 책이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를 어떻게 이끄시며 언약 백성을 어떻게 세우시는지를 다루는 구속사적 서신임을 보여 줍니다. 로마 교회 안에는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가 함께 있었습니다. 어떤 유대인은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이 복음을 거부한다면, 하나님 말씀은 실패한 것 아닌가”라는 근본 질문을 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이방인은 “이스라엘이 넘어졌으니 이제 우리는 대체 백성”이라는 교만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 두 위험을 동시에 다룹니다. 9장은 하나님의 신실하심(πιστός)이 무너졌다는 의심을 끊어 내며, 동시에 이방인 교회의 교만을 미리 차단합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9장은 차가운 예정론 논쟁의 장이 아니라, 언약의 하나님이 어떻게 자기 백성을 지키시고, 그 과정에서 긍휼(ἔλεος)과 공의(δικαιοσύνη)가 어떻게 함께 빛나는지를 보여 주려는 목회적·구속사적 장입니다. 2. 바울의 슬픔과 목회적 심장: 복음 논증은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로마서 9장은 바울의 감정으로 시작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한다”고 말하며, 성령(πνεῦμα ἅγιον) 안에서 자기 양심이 증언한다고 선언합니다. 이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이 장의 무게를 보여 주는 서약에 가깝습니다. 바울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