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6장 주해적 묵상

 

로마서 16장 주해적 묵상

이름으로 불러 세우시는 교회, 복음으로 지키시는 공동체

1. 본문 서두의 신학적 위치와 역할: 거대한 교리의 끝에서 ‘사람’으로 마무리되는 복음

로마서 16장은 로마서 전체의 결론이면서, 동시에 로마서가 결코 추상적인 교리 논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입니다. 1–11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의(δικαιοσύνη)와 믿음(πίστις)으로 말미암는 칭의(δικαιόω), 성령(πνεῦμα) 안의 새 생명, 그리고 이스라엘과 열방을 아우르는 구속사의 신비(μυστήριον)를 논증했습니다. 12–15장에서는 그 복음이 교회의 윤리와 공동체 질서, 선교적 방향으로 번역되어야 함을 권면했습니다. 그리고 16장에서는 마침내 그 모든 진리가 ‘관계’와 ‘인물’과 ‘구체적 공동체’의 자리로 내려앉습니다.

로마서 16장이 인상적인 이유는, 바울이 로마서의 정점에서 마지막을 장엄한 선언으로만 닫지 않고 수많은 이름을 부르며 편지를 끝맺는다는 데 있습니다. 복음은 교리로만 머물지 않고 사람을 세우고 공동체를 형성하며, 마침내 서로를 기억하고 환대하는 질서를 낳습니다. 바울은 이름을 부르며 복음이 만든 사회를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6장은 ‘부록’이 아니라, 로마서 전체가 지향했던 열매의 현장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성도는 홀로 남지 않고, 성령의 교제 안에서 서로를 동역자라 부르고, 고난과 사명을 함께 견디며, 거짓 가르침을 경계하고, 끝내 하나님께 영광(δόξα)을 돌립니다. 로마서 16장은 복음의 교회론적 결론이며, 예배로 수렴되는 신학의 마지막 호흡입니다.

2. 뵈뵈의 추천과 교회의 얼굴: 섬김(διάκονος)과 보호자(προστάτις)로 세워진 성도

로마서 16장은 뵈뵈의 추천으로 시작합니다. 바울은 뵈뵈를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 곧 섬기는 자(διάκονος)로 소개하며, 주 안에서 합당하게 영접하고 그가 필요로 하는 일을 도우라고 권합니다. 여기서 ‘추천’은 단지 개인 소개가 아니라, 초대교회가 복음의 신뢰를 공동체적으로 확인하는 방식입니다. 바울은 복음의 확장을 개인의 용기만으로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교회가 서로를 받아들이는 네트워크를 통해 사역이 안전하게 전달되고 성도들이 보호받는 구조를 세웠습니다.

특히 바울이 뵈뵈를 보호자, 돕는 자(προστάτις)로 부르는 대목은 교회가 가진 현실성을 보여 줍니다. 복음은 영혼만 구원하는 소식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 누군가를 지탱하고 돌보는 구조를 낳습니다. 교회는 가난한 자, 여행하는 사역자, 낯선 성도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몸이었습니다. 로마서 16장은 교회가 ‘말씀을 아는 집단’ 이전에 ‘서로를 지키는 가족’임을 드러냅니다. 구원론은 관계의 회복을 포함하며, 그 관계의 회복은 공동체적 돌봄으로 구체화됩니다.

3. 이름으로 부르는 신학: 동역자(συνεργός)들의 목록이 말하는 교회론

로마서 16장의 긴 문안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라, 교회론의 압축입니다. 바울은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나의 동역자(συνεργός)”로 부르며, 그들이 바울의 목숨을 위해 자기 목까지 내놓았다고 말합니다. 또한 그들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초기 교회가 가정 교회 형태로 모였음을 보게 됩니다. 교회는 건물보다 관계로 존재했고, 성도의 집은 복음의 거점이었습니다. 집에 있는 교회는 신앙을 사적인 취미로 가두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상이 예배의 장소가 되고, 식탁이 교제의 제단이 되며, 가정이 선교의 문이 됩니다.

바울은 에배네도, 마리아,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암비아, 우르바노, 스다구, 아벨레, 헤로디온, 나르기소의 집 사람들, 드루배나와 드루보사, 버시, 루포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더 많은 이름들을 부릅니다. 그 이름들의 다양성은 로마 교회의 사회적 구성과 복음의 포용성을 암시합니다. 유대적 이름과 이방적 이름, 노예로 보이는 이름과 가문을 연상시키는 이름들이 함께 등장합니다. 이는 로마서 3장에서 말했던 “차별이 없다”는 선언이 실제 공동체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교회는 동일한 계층이 모여 안정감을 얻는 클럽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소유권이 바뀐 사람들, 곧 주(κύριος)께 속한 사람들이 한 몸이 된 공동체입니다.

이 문안에서 중요한 것은 바울이 사람을 기능으로만 부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는 “수고하였다”라는 표현을 반복하며, 복음 사역이 영웅 한 사람의 업적이 아니라 공동체적 노동의 결과임을 보여 줍니다. 교회는 한 사람의 카리스마로 지속되지 않습니다. 성도들의 보이지 않는 수고, 환대, 헌신, 눈물, 섬김이 모여 복음의 길을 만듭니다. 로마서 16장은 복음이 교회를 ‘관중’이 아니라 ‘동역자들’로 세운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4. 거룩한 입맞춤과 교회의 예절: 화해의 표지로서의 공동체성

바울은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권합니다. 이것은 단지 문화적 인사법이 아니라, 복음이 만든 새로운 관계를 가시적으로 확인하는 표지였습니다. 입맞춤은 가까움과 받아들임의 몸짓이며, 거룩함은 그 가까움이 육적인 욕망이나 파벌적 친소 관계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형제 자매 됨의 관계임을 규정합니다. 로마서 14–15장에서 바울이 강한 자와 약한 자의 갈등을 다루며 ‘서로 받으라’고 했던 권면이, 16장에서는 공동체적 예절로 이어집니다. 교회는 진리를 알고도 서로를 차갑게 대하는 공동체가 될 수 없습니다. 복음의 진리는 반드시 관계의 온기를 낳아야 하며, 그 온기는 구체적 몸짓과 말투와 환대로 드러나야 합니다.

5. 분열을 일으키는 자들에 대한 경계: 교회를 지키는 순종(ὑπακοή)과 분별

로마서 16장 후반에서 바울은 갑자기 어조를 바꾸어 경고합니다. 분쟁과 거치는 일을 일으키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바울의 관심은 ‘다름’ 자체가 아니라 ‘복음에서 벗어난 가르침과 그것이 낳는 분열’입니다. 로마서 14장은 양심과 생활 규범의 차이를 사랑으로 품으라고 했지만, 16장은 복음 자체를 훼손하는 움직임에는 단호해야 함을 말합니다. 교회는 무조건적인 관용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교회는 복음의 중심을 지키는 분별 위에서 사랑을 실천합니다.

바울은 그런 사람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않고 자기 배를 섬긴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부드러운 말과 아첨으로 순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합니다. 여기서 교회론적 긴장이 드러납니다.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이지만, 동시에 진리의 공동체입니다. 사랑은 진리를 잃을 때 방종으로 변하고, 진리는 사랑을 잃을 때 폭력으로 변합니다. 바울은 이 균형을 지키기 위해, 순종(ὑπακοή)이 널리 퍼졌다는 칭찬을 하면서도 지혜롭게 선에 속하고 악에는 미련하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성도의 성숙은 모든 논쟁을 즐기는 지적 호기심이 아니라, 복음의 선을 붙들고 악의 교묘함에 휘말리지 않는 단순함입니다.

6. 종말론적 약속: “평강의 하나님”과 사탄의 짓밟힘

바울은 “평강의 하나님(ὁ θεὸς τῆς εἰρήνης)”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로마서 16장이 단순한 인사말로 끝나지 않는 이유를 보여 줍니다. 교회는 현실 속에서 분열의 위협과 거짓 가르침의 유혹을 경험하지만, 그 전쟁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전쟁입니다. 또한 “너희 발 아래”라는 표현은 창세기의 약속, 곧 뱀의 머리가 상하게 될 것이라는 구속사적 패턴을 떠올리게 합니다. 종말론은 미래의 정보가 아니라 현재의 용기를 낳는 약속입니다. 교회가 평강을 추구하는 이유는 갈등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승리를 보장하시는 질서 안에서 싸우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평강(εἰρήνη)은 단지 감정적 안정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화목에서 흘러나오는 공동체적 안정입니다. 로마서 5장이 말한 하나님과의 화평이 16장에서는 사탄의 패배와 연결됩니다. 구원론은 죄 사함에 머물지 않고, 악의 권세가 끝내 무너지는 종말론적 전망을 포함합니다. 교회는 이 전망 위에서 두려움이 아니라 소망으로, 분열이 아니라 일치로, 거짓이 아니라 진리로 자신을 지킵니다.

7. 마지막 영광송의 신학: 복음의 요약으로서의 찬양

로마서 16장의 마지막은 영광송으로 마무리됩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능히 너희를 견고하게 하실 분이라고 고백하며, 그 능력의 내용이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복음은 단지 바울 개인의 메시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교회를 견고하게 세우시는 방식입니다. 교회는 인간의 결속으로 견고해지지 않고, 복음으로 견고해집니다. 그 복음은 감정적 위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과 그 의미를 선포하는 진리입니다.

바울은 또한 “영원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 나타난 비밀(μυστήριον)”을 말하며, 그것이 선지자들의 글로 나타나 “영원하신 하나님(θεὸς αἰώνιος)의 명령”을 따라 “모든 민족이 믿음의 순종(ὑπακοὴ πίστεως)”에 이르도록 알려졌다고 고백합니다. 이 문장은 로마서 전체를 요약합니다. 복음은 갑작스런 즉흥적 아이디어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준비된 하나님의 구속사입니다. 그 구속사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르고 경쟁시키는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민족을 믿음의 순종으로 부르시는 이야기입니다. 로마서 1장 초두에서 바울이 “믿음의 순종”을 목표로 했다고 말했던 선언이, 16장의 영광송에서 다시 울립니다. 시작과 끝이 같은 목적을 향합니다. 하나님은 지혜로우시며, 그 지혜는 교회를 세우고 열방을 부르며 끝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 영광송의 결론은 “홀로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 무궁하도록”이라는 찬양입니다. 로마서는 인간의 죄를 깊이 드러냈고, 하나님의 의를 높였으며, 성령의 생명을 선포했고, 공동체 윤리를 요구했지만, 끝은 인간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신학은 여기서 마땅히 예배가 됩니다. 바울은 논증으로 하나님을 증명하려 하지 않고, 계시된 구속사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8. 바울의 목회적·구속사적 의도: 이름을 기억하게 하고, 복음을 지키게 하며, 예배로 서게 하다

로마서 16장에서 바울의 목회적 의도는 분명합니다. 첫째, 그는 교회를 추상적 집단이 아니라 얼굴과 이름을 가진 공동체로 기억하게 합니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사랑의 표현이며, 동시에 공동체를 세우는 방식입니다. 복음은 ‘무리’가 아니라 ‘사람’을 구원합니다. 둘째, 그는 교회를 분열시키는 거짓된 흐름을 경계하게 하여, 사랑이 무분별한 타협으로 변질되지 않게 합니다. 셋째, 그는 교회를 종말론적 약속 위에 세워 두려움이 아니라 평강의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넷째,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로 마무리하여, 교회의 존재 목적이 결국 하나님의 영광(δόξα)임을 다시 고백하게 합니다.

구속사적으로도 16장은 로마서 전체의 결론입니다. 감추인 비밀이 드러났고, 열방이 믿음의 순종으로 부름받고, 교회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서로를 받아들이며, 끝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로마서의 위대한 신학은 결국 교회라는 현장 속에서, 이름과 환대와 분별과 찬양으로 살아 움직입니다.

9. 묵상적 결론: 복음은 사람을 세우고, 교회를 지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합니다

로마서 16장을 묵상할수록 복음의 질감이 더 또렷해집니다. 복음은 멀리 있는 관념이 아니라, 이름을 부르고 수고를 기억하며 낯선 이를 영접하는 공동체의 일상 속에 깃듭니다. 복음은 서로를 판단하는 손가락을 내려놓게 하고, 서로를 세우는 말과 손길을 자라게 합니다. 복음은 또한 교회를 흔드는 거짓과 분열 앞에서 단호한 분별을 가르치되, 그 분별이 교만이 아니라 지혜로운 순종(ὑπακοή)이 되게 합니다. 그리고 복음은 마침내 종말의 약속 위에서 교회를 서게 하여, 사탄의 위협이 최종 결론이 아니라 평강의 하나님이 최종 결론임을 알게 합니다.

무엇보다 로마서 16장은 우리를 예배로 이끕니다. 교회의 견고함은 사람의 결속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며, 그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역사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복음의 열매를 확인하지만, 마지막에 붙드는 것은 인간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6장의 교회는 두 가지를 동시에 품습니다. 땅의 현실 속에서 이름을 부르고 돌보며 분별하는 구체성, 그리고 하늘의 영광을 향해 찬양으로 수렴하는 종말론적 방향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을 때 교회는 건강합니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되 사람을 우상화하지 않고, 진리를 지키되 진리를 무기로 삼지 않으며, 일상에서 수고하되 마지막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로마서 16장은 바로 그 교회의 얼굴을 우리 앞에 보여 주며, 복음이 끝내 어디까지 사람을 변화시키는지 조용히 증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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