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5장 주해적 묵상

 

로마서 15장 주해적 묵상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한 길로 열방을 향하여

1. 본문 서두의 신학적 위치와 역할: 공동체 권면의 절정에서 선교적 마침으로

로마서 15장은 로마서 전체 흐름에서 매우 독특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12장부터 시작된 윤리적 권면은 14장에서 ‘강한 자와 약한 자’의 갈등을 다루며 공동체의 일치를 구체적으로 요청했고, 15장은 그 요청을 더 높은 신학적 지평으로 끌어올려 마무리합니다. 다시 말해, 15장은 단지 “서로 배려하라”는 사회적 조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이 교회를 어떤 공동체로 빚는지, 그리고 그 공동체가 어떻게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사적 목적 안에 서는지를 보여 주는 결론부입니다.

특히 15장은 두 방향을 동시에 향합니다. 하나는 교회 안을 향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고 공동체가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치에 이르도록 촉구합니다. 다른 하나는 교회 밖을 향해, 바울 자신의 사도적 사명과 선교 계획을 드러내며 로마 교회가 열방 선교의 동역자가 되도록 초대합니다. 이 둘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바울에게 교회의 일치는 선교를 위한 전략이기 이전에 복음의 실체이며, 선교는 일치의 결과이기 이전에 복음의 본질입니다. 로마서 15장은 이 두 사실을 한 호흡으로 묶어, 교회가 ‘서로를 세우는 공동체’이면서 동시에 ‘열방을 향해 보내심 받은 공동체’임을 선언합니다.

2. 핵심 주제의 성경신학적 의미: 그리스도의 자기부정과 성경의 소망

2.1 강한 자의 부르심: 담당함(βαστάζω)은 은혜의 성숙한 형태입니다

바울은 “강한 자는 마땅히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βαστάζειν)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강함’은 단순한 성격의 강인함이 아니라, 음식과 절기 문제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신앙의 여유를 뜻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강함을 ‘권리의 증명’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강함은 책임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담당함은 상대의 성장을 위한 짐을 함께 지는 행위이며,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자신의 자유를 기꺼이 제한하는 사랑의 능력입니다. 이것은 율법주의가 아니라 복음주의적 성숙입니다. 구원론적으로 말하면, 믿음(πίστις)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공동체가 이제 그 의의 열매로 서로를 살리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2.2 그리스도의 모범: “자기를 기쁘게 아니하심”과 십자가의 패턴

바울은 이 권면을 단지 인간관계의 지혜로 정당화하지 않고 그리스도에게로 곧장 연결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아니하셨나니”라는 구절은 로마서 15장의 중심 심장입니다. 바울은 시편의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을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그리스도에게 떨어졌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신학의 중요한 패턴을 봅니다. 교회의 윤리는 ‘착한 사람 되기’에서 시작되지 않고, ‘그리스도가 어떤 길을 걸으셨는가’에서 시작됩니다. 그리스도의 길은 자기보존이 아니라 자기내어줌의 길이며, 자기정당화가 아니라 십자가의 길입니다. 교회가 이 길을 따를 때, 공동체의 일치는 억지로 맞춘 균일성이 아니라 십자가가 만들어 내는 새로운 관계의 질서가 됩니다.

2.3 성경(γραφή)과 인내(ὑπομονή), 위로(παράκλησις), 소망(ἐλπίς)

바울은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라고 말하며, 성경이 인내(ὑπομονή)와 위로(παράκλησις)를 통해 소망(ἐλπίς)을 주기 위함이라고 밝힙니다. 로마서 15장은 윤리의 근거를 성경으로 되돌립니다. 성도는 갈등을 경험할 때 자신의 성향이나 문화적 취향으로 결론을 내리기 쉽지만, 바울은 공동체를 성경의 이야기 속으로 다시 넣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속사가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는지, 하나님이 어떻게 자기 백성을 끝까지 붙드시는지 증언하며, 그 증언은 교회의 현실 갈등을 단지 당장의 문제로 보지 않게 합니다. 교회는 “지금 여기”의 불편을 넘어 “하나님의 약속이 어디로 가는가”를 바라보며, 그 시야 속에서 인내와 위로를 배우게 됩니다. 이 소망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하나님이 신실하심(πιστός)으로 자기 일을 이루신다는 확실성에서 나옵니다.

3. 교회론적 중심: 한 마음(φρόνησις)과 한 입(στόμα)으로 드리는 영광

3.1 “한 마음을 품게 하사”: 일치는 성격의 합이 아니라 은혜의 선물입니다

바울은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한 마음(φρονεῖν)을 품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여기서 일치는 인간이 억지로 만들어 내는 결속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열매입니다. 공동체의 화해는 말의 기술을 넘어, 하나님이 마음의 방향을 바꾸시는 일과 연결됩니다. 바울은 일치를 단순히 요구하지 않고 기도합니다. 이는 교회론적으로 중요한 통찰입니다. 교회는 조직으로 결속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 안에서 마음이 새롭게 되어 하나의 방향으로 정렬됩니다.

3.2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 예배가 공동체 윤리의 목표입니다

바울은 “한 마음과 한 입으로(ἐν ἑνὶ στόματι)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δόξα)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교회의 일치가 궁극적으로 향하는 곳은 인간관계의 평온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입니다. 갈등을 해결하는 목적이 ‘분위기 관리’가 아니라 ‘예배의 온전함’이라는 사실은 로마서 15장의 핵심입니다. 교회가 서로를 세우는 이유는 결국 예배가 막히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분열은 단지 관계의 문제를 넘어 예배의 왜곡이며, 화해는 단지 감정의 회복을 넘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영광의 회복입니다.

3.3 서로 받으라(προσλαμβάνω):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방식으로

바울은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προσέλαβε) 하나님께 영광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고 말합니다. 14장에서 시작된 ‘받으라’는 요청이 15장에서 그리스도론적 근거 위에 단단히 고정됩니다. 교회가 서로를 받는 기준은 문화의 동일성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환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으셨다는 사실은 곧 구원론의 요약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자격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은혜(χάρις)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서로를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복음의 내용을 부정하는 삶의 모순이 됩니다.

4. 유대인과 이방인의 연합: 언약 성취와 열방 찬양의 구속사

4.1 그리스도는 할례자의 종(διάκονος): 약속(ἐπαγγελία)의 신실한 성취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ἀλήθεια)으로 말미암아 할례자의 종(διάκονος)이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ἐπαγγελία)을 견고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매우 성경신학적인 문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이스라엘을 버리고 새 종교를 만드는 사건이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주신 언약을 성취하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시며, 그 신실하심은 그리스도의 섬김과 순종, 그리고 십자가에서 가장 분명히 드러납니다.

4.2 이방인의 찬양: 열방(ἔθνη)이 영광에 참여하는 길

바울은 이어 이방인이 긍휼(ἔλεος)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하며, 여러 구약 인용을 통해 열방의 찬양이 이미 성경 안에 예언되어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교회는 우연한 혼합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처음부터 계획하신 언약의 확장입니다. 이방인은 ‘대체 인력’이 아니라 약속의 열매이며,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은 구속사의 목적지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일치는 단지 내부 평화가 아니라, 열방이 한 하나님을 찬양하는 종말론적 예표입니다.

5. “소망의 하나님”(ὁ θεὸς τῆς ἐλπίδος)과 종말론적 풍성함

바울은 “소망의 하나님”께서 “믿음 안에서 모든 기쁨(χαρά)과 평강(εἰρήνη)을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δύναμις)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여기서 소망은 미래의 보상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소망은 현재를 견디게 하는 영적 에너지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넘치게 되는 삶의 방향입니다. 종말론적으로 교회는 이미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령의 내주로 새 시대를 맛보았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세계 속에서 갈등과 약함을 경험합니다. 그때 교회를 버티게 하는 것은 단지 규범이나 조직력이 아니라 소망입니다. 바울은 공동체의 갈등을 소망의 언어로 덮어버리지 않지만, 소망의 하나님께 공동체를 다시 맡깁니다. 이것이 교회의 성숙입니다. 현실을 직시하되, 현실이 최종 결론이 되지 않게 하는 믿음의 시야입니다.

6. 바울의 사도적 자기이해: 제사장적 섬김(λειτουργός)과 열방의 제물(προσφορά)

6.1 은혜로 받은 직분: 부르심(κλητός)이 선교의 책임으로 드러납니다

바울은 자신이 로마 교회에 담대히 쓴 이유를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χάρις)” 때문이라고 말하며, 자신이 이방인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바울의 직분 이해는 개인적 야망이 아니라 부르심(κλητός)에서 출발합니다. 부르심은 곧 보냄이며, 보냄은 곧 책임입니다. 교회가 선교를 ‘추가 선택’으로 여길 때, 바울은 선교가 복음의 본질에서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다시 보여 줍니다.

6.2 “제사장 직분을 행하여”: 복음 선포는 예배적 사역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 제사장 직분을 행하여(ἱερουργοῦντα) 이방인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προσφορά)이 되게 하려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선교는 단지 확장 프로젝트가 아니라 예배의 사건입니다. 복음 선포를 통해 열방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은 ‘새로운 예배자들의 탄생’이며, 그 예배자들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입니다. 또한 그 예물이 성령(πνεῦμα)으로 거룩하게(ἁγιάζω) 되었다고 말합니다. 교회론적으로 이것은 교회의 정체성을 규정합니다. 교회는 단지 도덕적 공동체가 아니라 성령에 의해 거룩하게 된 예배 공동체이며, 그 예배 공동체는 열방 가운데 예배를 일으키는 선교 공동체입니다.

7. 예루살렘 구제와 여행 계획: 복음의 네트워크와 교회의 한 몸 됨

바울은 예루살렘 성도를 위한 연보를 언급하며, 마게도냐와 아가야 교회가 기쁘게 참여했다고 말합니다. 이는 단순한 재정 보고가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교회라는 사실이 물질의 교제 안에서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이방인이 영적 유익을 받았다면 육적인 것으로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는 바울의 논리는, 복음이 실제 관계를 만들어 내는 방식을 보여 줍니다. 교회는 교리로만 하나가 되지 않고, 필요를 함께 짊어짐으로 하나가 됩니다.

이후 바울은 로마 방문과 스페인 선교 계획을 밝히며, 로마 교회의 협력을 기대합니다. 로마 교회는 단지 편지를 받는 독자가 아니라, 열방 선교의 동역자로 초대됩니다. 바울은 또한 기도를 요청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ἀγάπη)을 힘입어” 자신을 위해 함께 힘써 기도해 달라고 말합니다. 선교는 전략만으로 진행되지 않고, 교회의 기도와 사랑의 연대 속에서 진행됩니다. 바울의 선교 계획은 철저히 교회적이며, 그의 사역은 홀로의 영웅담이 아니라 몸 된 교회의 협력 속에서 이루어지는 구속사의 한 장면입니다.

8. 묵상적 결론: 서로를 세우는 일치가 열방을 향한 길을 엽니다

로마서 15장은 교회를 조용히 재정렬합니다. 교회의 중심은 취향의 일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자기부정이며, 교회의 힘은 논쟁의 승리가 아니라 성경이 주는 인내와 위로와 소망입니다. 강한 자는 자기 자유를 과시하지 않고 담당함으로 강함을 증명하며, 약한 자는 판단으로 공동체를 묶지 않고 주께 속한 형제를 주께 맡김으로 성숙을 배웁니다. 그 결과 교회는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 공동체가 됩니다.

동시에 로마서 15장은 일치가 결코 안으로만 수렴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서로를 받는 공동체는 열방을 향해 열립니다. 그리스도께서 할례자의 종이 되심으로 약속을 성취하셨고, 이방인이 긍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셨으니, 교회는 본질상 열방을 향한 공동체입니다. 바울이 자기 사역을 제사장적 섬김으로 이해한 것처럼, 교회의 선교는 단지 확장이 아니라 예배의 확장이며, 성령으로 거룩하게 된 백성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5장이 남기는 묵상은 한 방향으로 모입니다.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교회는 서로를 기쁘게 하기보다 서로를 세우며, 그 세움 위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 영광의 예배가 열방으로 흘러가게 합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성령의 능력으로 기쁨과 평강을 충만케 하실 때, 교회는 갈등을 넘어 찬양으로, 찬양을 넘어 선교로 나아갑니다. 그 길은 교회의 선택 가능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복음이 교회 안에서 실제가 될 때 자연스럽게 열리는 하나님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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