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4장 주해적 묵상

 

로마서 4장 주해적 묵상

: 아브라함의 믿음과 “전가”의 복음이 만드는 한 백성


1. 본문 서두의 신학적 위치와 역할: “이제” 드러난 의가 구약의 뿌리를 만나는 자리

로마서 4장은 로마서 논증의 흐름에서 매우 중요한 연결부입니다. 3장에서 바울은 “이제”(νυνί) 율법 밖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의(δικαιοσύνη θεοῦ)를 선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는 칭의(δικαιόω)를 복음의 중심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그 선언이 자칫 “새로운 종교의 새 원리”로 오해될 수 있기에, 4장은 곧바로 구약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 아브라함에게로 돌아갑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 안의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복음의 정당성을 세웁니다. 복음이 “율법을 무너뜨리는” 길이 아니라, 구약이 이미 약속하고 예표하던 “하나님의 한 길”의 성취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로마서 4장은 신학적으로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합니다. 하나는 3장의 칭의 교리를 구약의 언어로 견고히 하는 역할입니다. 다른 하나는 교회론적 갈등을 다루는 역할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백성인가”라는 질문, 곧 유대인의 할례(περιτομή)와 율법(νόμος)이 여전히 경계선으로 남아 있는지, 아니면 믿음(πίστις)이 새 언약 공동체의 표지인지가 로마 교회의 현실적 문제였습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을 통해 이 문제의 뿌리를 건드립니다. 그 결과 4장은 단순한 교리 설명을 넘어, 로마 교회가 어떻게 한 몸으로 서야 하는지를 복음의 논리로 안내하는 목회적 장이 됩니다.

2. 핵심 주제의 성경신학적 의미: “의로 여기심”과 언약 백성의 재구성

2.1 믿음(πίστις)과 의(δικαιοσύνη): 인간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언

로마서 4장의 중심 동사는 “여기다, 계산하다”(λογίζομαι)입니다. 바울은 창세기 15장 6절을 반복적으로 붙듭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그것을 그에게 의(δικαιοσύνη)로 “여기셨다”(λογίζομαι)는 말씀입니다. 이 “여기심”은 실제로 아브라함이 도덕적으로 완전해졌다는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믿는 자에게 의의 지위를 부여하시는 법정적 선언이자 언약적 인정입니다. 칭의(δικαιόω)는 인간 안에서 의가 “생산”되는 과정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신분이 “선포”되는 사건입니다. 바울은 이 점에서 복음의 본질을 분명히 합니다. 구원은 인간의 공로를 쌓아 하나님께 제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χάρις)로 주시는 선물을 믿음으로 받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믿음(πίστις)은 단순한 심리적 확신이나 종교적 열정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신뢰하는 관계적 응답이며, 하나님이 약속을 성취하실 능력이 있다는 사실에 자신을 맡기는 태도입니다. 바울은 믿음을 “행위의 반대편”에 두는 동시에, 믿음을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오해하지 않게 합니다. 믿음은 공로가 없다는 점에서 행위와 다르지만, 하나님께 붙드는 실제적인 결단이라는 점에서 결코 공허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인간의 자랑을 꺾되, 인간을 무기력으로 던져 놓지 않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향한 새 방향이며, 하나님이 시작하신 구원을 붙드는 손입니다.

2.2 다윗의 복(μακαρισμός)과 죄 사함: 전가(λογίζομαι)는 “의의 부여”만이 아니라 “죄의 미계산”입니다

바울은 아브라함만 말하지 않고 다윗을 함께 불러옵니다. 시편 32편을 인용하며, 죄가 사함 받고 죄가 가려지고 주께서 죄를 “정죄로 계산하지 않으시는”(λογίζομαι) 사람이 복되다고 말합니다. 이는 “전가”의 논리가 한 방향만이 아니라 두 방향임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의를 “여기시는” 동시에, 그의 죄를 “계산하지 않으십니다.” 구원은 중립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 하나님의 의의 자리로 옮겨지는 사건입니다. 이때 복은 감정의 고양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며 법정적 정죄가 제거되는 평강의 상태입니다. 로마서 5장에서 “하나님과 화평”이 펼쳐질 토대가 이미 4장에서 마련됩니다.

3. 할례(περιτομή) 논증과 교회론: 표지의 순서가 공동체의 경계를 바꿉니다

3.1 믿음이 먼저, 할례는 뒤: 표지는 근거가 아니라 인(σημεῖον)입니다

로마서 4장에서 바울이 가장 공들여 다루는 논점 중 하나는 할례의 순서입니다. 아브라함은 언제 의롭다 하심을 받았는가. 할례를 받은 후인가, 받기 전인가. 바울의 답은 분명합니다. 할례 이전입니다. 바울은 할례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할례의 의미를 제자리로 돌려놓습니다. 할례는 의를 얻는 조건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은 의의 “인”(σημεῖον)이며 “인치심”(σφραγίς)입니다. 표지는 근거가 아니라 결과이며, 원인이 아니라 확인입니다.

이 논증은 교회론적으로 결정적입니다. 만일 의롭다 하심이 할례 이후에 주어진 것이라면, 이방인은 반드시 유대적 표지를 먼저 통과해야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먼저이고 할례가 뒤라면, 하나님의 백성은 혈통과 표지로 구성되지 않고 믿음으로 구성됩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을 “무할례자의 조상”이자 “할례자의 조상”으로 제시합니다. 즉 아브라함은 유대인만의 조상이 아니라, 믿는 모든 자의 조상입니다. 교회는 이 결론 위에서 서야 합니다. 교회의 일치는 취향이나 문화적 동질성에서 오지 않고, 같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자리에서 옵니다.

3.2 참된 언약 백성: 경계선이 “육체”에서 “믿음”으로 이동합니다

성경신학적으로 이는 언약의 표지가 이동하는 과정입니다. 구약에서 할례는 언약 공동체의 표지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표지를 폐기하기 위해가 아니라, 그 표지가 가리키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 순서를 강조합니다. 표지가 가리키던 실체는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라는 정체성이고, 그 정체성은 결국 믿음으로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2장에서 바울이 말한 마음의 할례, 영(πνεῦμα)에 속한 표지가 여기서 더 선명해집니다. 교회는 표지의 경쟁이 아니라, 은혜의 표지로 살아야 합니다. 그 은혜의 표지는 믿음이며, 믿음은 공동체를 열어 젖히는 문이 됩니다.

4. 약속(ἐπαγγελία)과 율법(νόμος): 은혜로 주어지는 상속의 논리

4.1 상속자와 약속의 성격: 약속은 계약서가 아니라 은혜의 선언입니다

로마서 4장에서 바울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ἐπαγγελία)을 “그가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는 말로 확장합니다. 이 표현은 단지 땅의 소유를 말하는 수준을 넘어,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열방이 복을 얻는다는 창세기의 언약 약속이 궁극적으로 새 창조의 지평으로 열릴 것임을 암시합니다. 약속은 한 가족의 번영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연결됩니다. 이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가 핵심인데, 바울은 단호히 말합니다. 율법으로가 아니라 믿음의 의(δικαιοσύνη)로입니다.

약속은 “임금 지급”이 아닙니다. 바울은 일을 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삯을 예로 들어, 행위의 논리가 들어오면 약속은 더 이상 은혜가 아니게 된다고 말합니다. 약속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주시는 선물이며, 그 선물이 선물로 남기 위해서는 은혜(χάρις)의 방식으로 주어져야 합니다. 바울은 “약속이 모든 후손에게 견고하게 되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은혜는 배타적 특권을 만들기보다, 약속을 넓게 견고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율법 중심의 구원 논리는 결국 약속을 좁힙니다. 은혜 중심의 복음은 약속을 열어 넓힙니다.

4.2 율법이 진노(ὀργή)를 일으킨다는 말의 의미: 율법의 거룩함과 인간의 무능력

바울은 “율법이 진노를 이루게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율법이 악하다는 뜻이 아니라, 죄 아래 있는 인간이 율법을 통해 자기 의를 세우려 할 때 오히려 정죄가 분명해진다는 뜻입니다. 율법은 죄를 치료하는 처방이기보다 죄를 드러내는 거울이 됩니다. 그러므로 약속을 율법 위에 세우면, 그 약속은 인간의 실패 앞에서 끊임없이 흔들립니다. 그러나 약속을 은혜 위에 세우면, 그 약속은 하나님 자신의 신실하심(πιστός) 위에 놓입니다. 여기서 바울의 논증은 단지 논리의 승리가 아니라, 신자를 불안에서 해방시키는 목회적 위로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일관성에 달린 것이 아니라, 약속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달려 있습니다.

5. 아브라함의 믿음의 성격: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가 아니라, “죽은 것을 살리시는” 하나님을 신뢰함

5.1 소망(ἐλπίς)과 믿음: 현실 부정이 아니라 창조주 신뢰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묘사하면서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ἐλπίς) 믿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도 죽은 것 같다는 사실을 모른 척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현실 부정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하나님이 현실의 한계를 넘어 약속을 이루실 수 있음을 신뢰하는 태도입니다. 바울이 강조하는 핵심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입니다. 아브라함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믿음은 가능성을 계산하는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붙드는 고백입니다.

5.2 “의심하지 아니하고”(διακρίνω) “확신하여”(πληροφορέω): 믿음은 완벽한 감정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께로 기울어진 중심입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이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그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확신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의심(διακρίνω)의 반대는 인간적 감정의 흔들림이 전혀 없는 상태라기보다, 마음의 방향이 두 갈래로 갈라지지 않는 상태입니다. 믿음은 언제나 하나님 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확신(πληροφορέω)은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약속하신 분이 능히 이루실 수 있다는 하나님 중심의 확신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자기 능력의 확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신뢰로부터 자라납니다. 이 지점에서 로마서 4장은 성도의 성화와도 연결됩니다. 성도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확신을 생산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소망과 순종으로 빚어지는 존재입니다.

6. 구원론·종말론적 연결: 부활(ἀνάστασις) 신앙이 칭의의 중심에 놓입니다

6.1 우리에게 “기록된 것”: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과거의 전기가 아니라 복음의 현재입니다

바울은 창세기의 “의로 여기셨다”(λογίζομαι)가 아브라함만을 위한 말이 아니라고 못박습니다. “우리에게도 의로 여기려 하심이라”는 선언이 나옵니다. 즉 로마서 4장은 성경신학적으로 전형과 성취의 구조를 가집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신자의 믿음을 설명하는 모형이자, 복음이 구약 안에서 이미 작동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교회는 구약과 분리된 새로운 집단이 아니라, 약속의 흐름 위에 세워진 성취의 공동체입니다.

6.2 부활하신 예수와 칭의: 믿음의 대상은 “약속”이 아니라 “살리시는 하나님”입니다

로마서 4장의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ἀνάστασις)과 직결됩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분이시며,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바울은 예수께서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구원론의 중심이 또렷해집니다. 칭의는 단지 십자가 사건 하나만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한 구속 사건 전체를 붙듭니다. 죄의 문제는 십자가에서 결적적으로 다루어졌고, 그 구원이 참으로 유효하다는 하나님의 판결은 부활로 공표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추상적 원리를 믿는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주님을 세우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종말론적으로도 부활은 결정적입니다. 부활은 미래에 올 새 창조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표지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이 “세상의 상속”으로 확장될 때, 우리는 그 약속의 완성이 단지 개인의 종교적 안녕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의 지평을 향해 열려 있음을 보게 됩니다. 로마서 4장은 조용히 로마서 8장의 창조 회복과 영화의 약속으로 통로를 만들어 줍니다.

7. 바울의 목회적·구속사적 의도: 로마 교회를 한 복음 안에 세우려는 섬김

로마서 4장에서 바울은 교리적 승리를 과시하지 않습니다. 그의 의도는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로마 교회는 다양한 배경의 성도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 다양성은 곧 분열의 가능성을 품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을 통해 유대인의 자랑을 꺾되, 유대인의 성경을 폐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대인의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동시에 이방인 성도들에게는 “너희는 밖에서 들어온 손님”이라는 열등감을 제거합니다. 믿음이 표지라면, 이방인은 부차적 구성원이 아니라 본래 약속의 흐름 속으로 초대된 후손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혈통의 논리에서 은혜의 논리로 이동시킵니다. 그 결과 교회의 중심은 규정이 아니라 약속이며, 자랑이 아니라 감사가 됩니다.

구속사적으로도 바울은 중요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길을 포기하지 않으셨고, 그 약속을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하셨습니다. 인간의 실패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자신의 연약함을 근거로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근거로 소망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의 늙은 몸과 사라의 죽은 태를 굳이 언급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불가능의 자리에서 약속을 이루시는 분이시며, 복음은 그런 하나님의 방식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다는 소식입니다.

8. 묵상적 결론: 은혜의 계산법으로 살아가는 공동체

로마서 4장은 우리에게 “계산”의 언어를 새롭게 가르칩니다. 세상은 늘 계산합니다. 무엇을 했는지, 얼마나 했는지, 누구보다 나은지로 자신을 증명하려 합니다. 그러나 복음의 계산법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의를 여기시고(λογίζομαι), 그의 죄를 정죄로 계산하지 않으십니다(λογίζομαι). 이 계산의 전환은 단지 마음의 위로가 아니라, 존재의 기반을 바꾸는 사건입니다. 더 이상 우리는 자기 의의 장부를 들고 하나님 앞에 서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열어 주신 은혜의 장부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 안에서 자랑은 사라지고, 감사가 자랍니다. 그 안에서 비교는 약해지고, 형제를 세우는 사랑이 가능해집니다.

또한 로마서 4장은 믿음이 무엇인지 조용히 바로잡습니다. 믿음은 현실을 외면하는 낭만이 아니라, 죽은 것을 살리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담대함입니다. 믿음은 내 안에서 확신을 만들어 내는 기술이 아니라, 약속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순전한 방향입니다. 그 방향이 흔들릴 때에도, 약속의 신실하심(πιστός)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은 불안의 자기증명에서 벗어나, 약속의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평강으로 옮겨집니다.

교회 역시 이 은혜의 계산법 위에 서야 합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면, 교회는 표지와 배경의 차이로 서열을 만들 수 없습니다. 교회는 아브라함의 자손을 혈통으로 규정하지 않고, 믿음으로 규정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중심에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하나님이 그를 살리셨다는 사실은, 우리의 칭의가 흔들리지 않는 근거이며, 약속이 새 창조의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는 보증입니다. 로마서 4장이 들려주는 복음은 결국 한 가지 삶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은혜로 시작하여 은혜로 걷는 삶, 자랑 대신 감사로 말하는 삶, 비교 대신 약속의 신실하심을 붙들고 서로를 세우는 삶입니다. 그 삶이야말로 아브라함의 믿음이 오늘 교회 안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는 자리이며, 로마서 4장이 우리를 부르는 복음의 길입니다.

로마서 장별 요약 및 주제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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