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7장 주해적 묵상

 

로마서 7장 주해적 묵상

: 율법의 선함과 내 안의 전쟁, 그리고 그리스도 안의 해방


1. 본문 서두의 신학적 위치와 역할: 성화의 길목에서 “율법”을 다시 묻다

로마서 7장은 로마서 6장과 8장 사이에 놓인, 신자의 경험을 가장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장입니다. 6장에서 바울은 은혜(χάρις)가 죄의 면허가 아니라 새 주인의 통치라는 사실을 선포했고,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죄의 권세가 꺾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신자는 현실에서 여전히 죄의 유혹과 내적 갈등을 경험합니다. 그렇다면 그 갈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율법(νόμος)은 그 갈등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그리고 복음은 그 갈등을 어떻게 해석하게 하는가가 로마서 7장의 핵심 질문입니다.

7장은 단순히 “율법은 나쁘다” 혹은 “율법은 필요 없다”라는 결론을 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율법의 선함을 확고히 하면서도, 죄(ἁμαρτία)가 어떻게 율법을 발판으로 삼아 인간을 무너뜨리는지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신자 안에 일어나는 내적 전쟁을 묘사하여, 복음이 왜 성령(πνεῦμα)의 능력으로 이어져야 하는지, 왜 로마서 8장의 “성령을 따른 삶”이 필연인지 길을 닦습니다. 로마서 7장은 신자의 성화가 단순한 의지 강화가 아니라 구속사적 전환, 곧 새 언약의 능력 안에서만 가능한 길임을 드러내는 장입니다.


2. 율법과 결혼 비유: “속박에서 풀려남”은 무율법이 아니라 새 열매를 위한 해방이다

2.1 “율법은 살아 있는 동안 주장한다”: 통치의 원리와 인간의 착각

바울은 “법을 아는 자들”에게 말하며, 율법이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그를 주장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율법(νόμος)은 단지 모세율법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계시로서의 율법을 중심으로 한 “법의 원리”를 포함합니다. 바울이 이 사실을 상기시키는 이유는,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삶”으로 들어왔는데도 여전히 율법을 통해 자신을 규정하려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쉽게 “하나님이 나를 받아주시는 근거”를 행위에서 찾으려 하고, 그 순간 율법은 은혜의 길을 막는 잣대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문제는 율법 자체가 아니라, 죄와 육신(σάρξ) 아래 놓인 인간이 율법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2.2 “남편이 죽으면 법에서 놓인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만드는 신분 변화

바울은 결혼의 비유를 들어, 남편이 살아 있을 때는 아내가 법적으로 매여 있으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풀려난다고 말합니다. 이 비유의 요점은 결혼 윤리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속박에서의 해방”이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는지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바울의 결론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했습니다. 여기서 “죽임”은 단순한 심리적 결심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연합 속에서 일어난 객관적 사건입니다. 신자는 율법의 정죄 아래에서 벗어나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그리스도께 속하게 되었습니다.

이 전환의 목적은 무규범 상태가 아닙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 맺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율법에서 풀려났다는 것은 거룩함(ἁγιασμός)의 요구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열매 맺는 방식이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이전에는 문자(γράμμα)의 낡은 방식으로, 곧 외적 규정과 죄책의 동력으로 살았다면, 이제는 영(πνεῦμα)의 새 방식으로, 곧 성령의 생명과 은혜의 동력으로 살아갑니다. 7:6은 로마서 8장을 미리 열어젖히는 문입니다. 성화는 율법이 약해져서가 아니라,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심으로 가능해집니다.


3. 율법과 죄의 역설: 율법은 거룩하나 죄는 율법을 이용한다

3.1 “율법이 죄냐”: 바울이 거부하는 오해와 복음의 균형

바울은 예상 질문을 제기합니다. “그러면 율법이 죄냐.” 그는 단호히 “그럴 수 없느니라”라고 답합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계시이며, 죄를 죄로 드러내는 거울입니다. 문제는 율법이 아니라 죄(ἁμαρτία)입니다. 바울은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죄를 알지 못하였다”고 말하며, 특히 “탐내지 말라”는 계명(ἐντολή)을 통해 탐심(ἐπιθυμία)의 실체를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죄는 단지 나쁜 행동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과 욕망의 질서가 무너진 상태입니다. 율법은 그 무너짐을 정확히 드러냅니다.

3.2 “죄가 기회를 타서”: 죄의 의인화와 인간 내면의 침투

바울은 죄를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권세”로 묘사합니다. 죄가 계명으로 말미암아 기회(ἀφορμή)를 타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죄가 율법을 악용하여 인간을 더 깊이 묶는 역설을 보여 줍니다. 율법이 선하다고 해서 죄가 약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죄는 선한 것을 왜곡하는 능력을 가집니다. 인간은 율법을 들을 때 “이제 해야 한다”는 긴장과 자부심을 동시에 느끼고, 그 틈에서 죄는 교만과 절망을 번갈아 공급합니다. 교만은 “나는 할 수 있다”는 자기의(δικαιοσύνη)로 흐르고, 절망은 “나는 안 된다”는 체념으로 흐릅니다. 둘 다 복음의 길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3.3 “죄가 나를 죽였다”: 사망(θάνατος)과 계명의 비극적 결합

바울은 계명이 생명에 이르게 할 것으로 여겼으나, 죄가 그것을 이용해 자신을 속이고 죽였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속임”은 창세기 타락의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죄는 언제나 생명을 약속하지만, 결과는 사망(θάνατος)입니다. 바울은 율법이 죽게 한 것이 아니라, 죄가 율법을 통해 자신을 죽게 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명확합니다.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나, 죄의 실체는 더 악하며 더 깊습니다. 이 진단은 로마서 8장에서 “하나님이 하셨다”는 구원의 능력을 더 빛나게 하는 어두운 배경이 됩니다.


4. “내 안의 전쟁”의 신학: 원하는 선과 행하는 악 사이에서

4.1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다”: 자아(ἐγώ) 진술의 대표성과 현실성

로마서 7장 후반은 신자들이 가장 공감하면서도 가장 오해하기 쉬운 부분입니다. 바울은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라고 말하고,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한다”고 고백합니다. 이때 “나”(ἐγώ)가 누구인가에 대한 논의가 많지만, 본문의 목회적 힘은 바울이 인간의 내적 분열을 숨기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바울은 죄가 단지 외부의 유혹이 아니라, 내 안에서 작동하는 법칙처럼 느껴질 만큼 깊이 침투해 있음을 말합니다.

이 “나”는 바울 개인의 자서전이면서 동시에 대표적 인간의 고백입니다. 율법을 알고 선을 기뻐하는 마음이 있음에도, 실제 삶에서는 다른 힘이 끌고 간다는 경험은 이스라엘의 역사에도, 신자의 현실에도 반복됩니다. 바울은 죄를 “내 지체 속에 있는 다른 법”으로 묘사하며, 마음의 법과 싸워 자신을 사로잡는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법(νόμος)은 조문이 아니라 작동 원리입니다. 죄가 습관이 되고 구조가 되면, 사람은 자기 의지의 힘만으로 빠져나오기 어렵습니다. 바울은 그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복음의 실제를 말하기 시작합니다.

4.2 “속사람”과 “지체”: 마음의 동의와 몸의 끌림 사이의 긴장

바울은 “속사람을 따라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고 말합니다. 속사람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내면의 새 방향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동시에 “내 지체 속에서” 다른 법이 자신을 사로잡는다고 말합니다. 이는 몸이 악하다는 이원론이 아니라, 죄가 인간의 전 존재, 곧 욕망과 습관과 관계의 통로들에 깊이 파고들어 있다는 진단입니다. 신자는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뜻(θέλημα)을 원하지만, 몸의 습관과 환경의 압력 속에서 흔들립니다. 바울은 이 긴장을 숨기지 않음으로써, 신자에게 두 가지 길을 막습니다. 하나는 위선의 길입니다. 겉으로만 의로운 척하며 속에서는 죄와 타협하는 길입니다. 다른 하나는 절망의 길입니다. 싸움을 경험한다는 이유로 자신이 구원받지 못했다고 단정하는 길입니다. 바울은 싸움 자체가 “하나님을 기뻐하는 마음”이 존재한다는 표지일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그 싸움은 동시에 “내 능력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고백으로 우리를 몰아갑니다.

4.3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 탄식(στεναγμός)과 구원의 문턱

바울은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외칩니다. 이것은 자기혐오의 감정이 아니라, 죄의 실체를 정직하게 본 사람이 내뱉는 탄식입니다. 탄식은 신앙의 실패가 아니라, 구원의 문턱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자원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인간은 마침내 은혜를 구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의 복음은 여기서 가장 선명해집니다. 구원은 사람이 자신을 고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을 구출하는 사건입니다.


5. 구원론·교회론·종말론적 연결: 율법 아래의 좌절에서 성령 안의 자유로

5.1 구원론: 칭의가 끝이 아니라 성령의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로마서 7장은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성도가 왜 여전히 죄와 싸우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해석을 제공합니다. 칭의는 정죄의 문제를 해결하지만, 죄의 잔존하는 영향력은 성화의 전장 속에서 다루어집니다. 바울은 그 전장이 얼마나 치열한지 말하면서도, 해결의 방향을 분명히 제시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해결은 더 강한 의지가 아니라, 더 크신 구원자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자는 로마서 8장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 안에 실제가 됩니다. 7장은 8장을 기다리게 하는 장입니다.

5.2 교회론: 율법주의와 방종 사이에서 복음의 공동체는 어떻게 서는가

로마 교회는 서로 다른 배경의 성도들이 한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누군가는 율법을 지킴으로 정체성을 확인했고, 누군가는 자유를 통해 새 삶을 맛보았습니다. 로마서 7장은 어느 한쪽만 옳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율법을 선하게 인정하면서도, 율법이 죄를 이기지 못한다는 한계를 보여 줍니다. 이 균형은 교회를 지킵니다. 율법을 붙들어 서로를 정죄하는 공동체도 위험하고, 율법을 무시하며 거룩을 가볍게 여기는 공동체도 위험합니다. 복음의 공동체는 율법의 선함을 존중하되, 거룩함(ἁγιασμός)의 동력이 성령과 은혜에서 온다는 사실로 서로를 세웁니다. 그래서 교회는 “정죄의 공동체”가 아니라 “은혜로 싸움을 함께 견디는 공동체”가 됩니다.

5.3 종말론: 이미와 아직 사이의 신자의 탄식은 장차 올 해방을 향한다

로마서 7장의 탄식은 종말론적 긴장 속에 있습니다.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새 생명에 들어왔지만, 아직 죄의 흔적과 사망의 그림자가 남아 있는 세계를 삽니다. 그래서 신자는 내면의 전쟁을 경험합니다. 이 전쟁은 구원이 실패했다는 증거가 아니라, 구원이 이미 시작되었기에 경험하는 긴장일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이 창조의 탄식과 성도의 탄식을 말하며 궁극적 구속을 바라보게 하듯, 로마서 7장의 탄식은 장차 완성될 해방을 향해 열린 탄식입니다. 그 탄식은 신자를 냉소로 데려가지 않고, 감사와 소망으로 데려갑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6. 바울의 목회적·구속사적 의도: 죄의 실체를 숨기지 않고, 은혜의 길을 더 크게 열다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신자의 내면을 지나치게 이상화하지 않습니다. 그는 “신자는 늘 승리한다”는 단순한 성공담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자의 싸움을 정직하게 드러냅니다. 그 이유는 목회적입니다. 싸움을 경험하는 성도가 스스로를 정죄하며 복음에서 멀어지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동시에 바울은 싸움을 면죄부로 바꾸지 않게 합니다. 죄의 실체를 알수록 죄를 가볍게 대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율법을 악으로 돌리지도 않고, 인간의 힘을 신뢰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구속사의 큰 길을 따라 말합니다. 율법은 죄를 드러내고, 죄는 인간을 사로잡고, 그리스도는 구출하시며, 성령은 새 삶을 가능케 하십니다. 이 흐름 속에서 로마서 7장은 “자기 의의 길”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 보여 주며, “그리스도 의존의 길”을 더 분명히 제시합니다.


7. 묵상적 결론: 전쟁을 숨기지 말고, 구원자를 더 가까이 붙들라

로마서 7장은 신자의 내적 전쟁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줍니다. 우리는 선을 원하면서도 악을 행하는 자신을 보고 당황합니다. 그때 우리는 두 가지 잘못된 길로 가기 쉽습니다. 하나는 위선으로 도망가는 길입니다. 겉모양으로 자신을 포장하며 속의 전쟁을 숨기는 길입니다. 다른 하나는 절망으로 무너지는 길입니다. 싸움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정죄로 해석하는 길입니다. 바울은 이 두 길을 모두 막습니다. 그는 율법의 선함을 인정하면서도, 죄의 교활함을 폭로하고, 인간의 무능을 고백하면서도, 그 고백을 감사로 돌려놓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러므로 로마서 7장이 우리에게 주는 묵상은 단순합니다. 신앙은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전쟁 속에서 누구를 붙드느냐의 문제입니다. 내 힘을 붙들면 전쟁은 곧 절망이 되지만, 그리스도를 붙들면 전쟁은 은혜로 향하는 통로가 됩니다. 죄가 여전히 말을 걸어오고 습관이 우리를 끌어당길 때, 우리는 자기 단속의 의지로만 서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기억하고, 성령의 새 방식으로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음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이 전쟁을 부끄러움으로 만들지 않고, 은혜의 자리에서 함께 견디며 서로를 세우는 공동체로 서야 합니다. 로마서 7장은 우리를 자책의 늪에 가두기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구원자를 더 가까이 붙들게 하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그 구원자의 손길은 로마서 8장에서 성령의 생명으로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러니 로마서 7장의 탄식은 끝이 아니라, 자유를 향해 열리는 시작이며, 은혜의 문 앞에서 드리는 가장 정직한 기도입니다.

로마서 장별요약 및 주제 해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요한복음 1:24-28 묵상, 너희 가운데 서 계신 그분

성경과 신앙

2026년 3월 둘째 주일 예배 대표기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