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설교가 이해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목사님 설교가 이해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데도 무슨 말인지 잘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분명 성경 본문을 읽고 설명하는데, 설교가 끝난 뒤에는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기억나지 않기도 합니다. 그럴 때 성도는 자신을 먼저 의심하기 쉽습니다.

“내가 성경 지식이 부족한 것일까요?”
“믿음이 없어서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일까요?”
“영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설교가 이해되지 않는 이유를 무조건 듣는 사람의 믿음 부족으로 돌려서는 안 됩니다. 설교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이기 때문입니다. 이해되지 않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설교의 중심이 분명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좋은 설교에는 중심 메시지가 있어야 합니다. 한 편의 설교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설교자가 너무 많은 내용을 한 번에 말하면 듣는 사람은 길을 잃게 됩니다.

성경 원어, 역사적 배경, 예화, 교리, 개인 경험이 계속 이어지지만 이 모든 내용이 하나의 중심으로 모이지 않으면 설교는 복잡해집니다. 정보는 많지만 메시지가 분명하지 않은 것입니다.

설교는 성경 지식을 많이 나열하는 시간이 아니라, 본문이 오늘의 성도에게 무엇을 말씀하는지를 분명하게 들려주는 일입니다. 설교의 중심이 흔들리면 아무리 좋은 내용이 많아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말이 지나치게 추상적일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붙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신앙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면 듣는 사람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불안한 상황에서 믿음이 어떤 선택으로 나타나는지, 관계의 갈등 속에서 믿음이 어떤 태도를 요구하는지 설명해야 합니다.

설교는 추상적인 신앙 언어를 실제 삶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입니다. 그 번역이 충분하지 않으면 오랫동안 교회를 다닌 사람도 설교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성경 본문의 문맥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오래전 특정한 역사와 문화 속에서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본문이 누구에게, 어떤 상황에서, 왜 주어졌는지를 알아야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설교자가 본문의 앞뒤 문맥을 설명하지 않고 한 구절만 떼어 적용하면 듣는 사람은 내용의 연결을 놓치게 됩니다. 본문이 말하는 뜻과 설교자가 하고 싶은 말이 분리되기도 합니다.

설교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것만으로 성경적인 설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의 의미를 충실하게 밝히고, 그것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도의 삶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 주어야 합니다.

설교자가 자신만 아는 언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신학 용어와 교회 용어는 설교자에게 익숙하지만 성도에게는 낯설 수 있습니다.

칭의, 성화, 언약, 섭리, 종말론, 구속사와 같은 말은 중요한 신학 개념입니다. 그러나 뜻을 설명하지 않은 채 반복하면 설교는 전문가들만 이해하는 언어가 됩니다.

예수님은 깊은 진리를 말씀하셨지만 씨 뿌리는 사람, 잃어버린 양, 포도나무, 등불처럼 사람들이 일상에서 접하는 소재를 사용하셨습니다. 깊은 설교는 어려운 말을 많이 사용하는 설교가 아닙니다. 깊은 내용을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하는 설교입니다.

듣는 사람의 몸과 마음이 지쳐 있을 수 있습니다

설교가 이해되지 않는 이유가 항상 설교자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듣는 사람의 몸과 마음이 지쳐 있을 때에도 집중하기 어렵습니다.

잠이 부족하거나, 걱정이 많거나, 관계의 상처와 경제적 부담에 눌려 있다면 설교를 들어도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 큰 불안이 있으면 한 문장을 오래 붙들기 어렵습니다.

이것을 곧 믿음 부족이라고 판단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간은 영혼만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가진 존재입니다. 지친 사람에게는 휴식과 돌봄이 필요합니다.

예배 전에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본문을 미리 읽거나, 설교 중 핵심 단어만 간단히 적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성경에 대한 기본 배경지식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한 권의 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다양한 시대와 저자, 장르로 이루어진 책입니다. 율법서, 역사서, 시가서, 예언서, 복음서와 서신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읽어야 합니다.

예언서를 역사적 배경 없이 읽거나, 시편의 시적 표현을 문자적으로만 이해하면 설교가 낯설게 들릴 수 있습니다.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이라면 인물과 사건의 연결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자신을 탓할 것이 아니라 성경의 전체 흐름을 차근차근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창조, 타락, 언약, 이스라엘, 예수 그리스도, 교회, 새 창조라는 큰 틀을 알고 나면 설교의 내용이 조금씩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설교와 나의 관심이 연결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과 관련 있다고 느끼는 내용에 집중합니다. 그런데 설교가 현실의 고민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듣는 사람은 관심을 잃기 쉽습니다.

성도는 직장, 가정, 건강, 관계, 자녀, 노후, 외로움, 죄책감과 같은 현실을 안고 예배에 나옵니다. 설교가 이러한 삶의 문제를 외면하고 교리적 설명에만 머문다면 말씀과 현실 사이에 거리가 생깁니다.

물론 설교가 인간의 필요만을 채우는 심리 상담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인간의 실제 삶을 향합니다. 바른 설교는 성경의 진리를 현실의 자리까지 데리고 와야 합니다.

설교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이 잘 들리지 않는 날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주님의 말씀을 자주 오해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여러 차례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그 뜻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해가 늦다고 해서 제자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무엇을 말하는가?”
“설교자가 강조한 핵심은 무엇인가?”
“이 말씀이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보여 주는가?”
“내 삶에서 순종해야 할 한 가지는 무엇인가?”

이렇게 질문하면 설교 전체를 다 이해하지 못해도 한 가지 메시지는 붙들 수 있습니다.

이해되지 않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먼저 설교 본문을 예배 전에 한 번 읽어 보십시오. 내용 전체를 알지 못하더라도 인물과 사건, 반복되는 단어를 확인하면 설교를 따라가기 쉬워집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모든 내용을 적으려 하지 말고 중심 문장 하나, 기억에 남는 성경 구절 하나, 적용할 점 하나만 기록해도 충분합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목회자나 교역자에게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질문은 무례하거나 믿음 없는 행동이 아닙니다. 오히려 말씀을 진지하게 듣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다만 계속해서 설교의 중심을 찾기 어렵고, 본문 설명보다 개인적인 주장이나 감정적 호소만 반복된다면 설교의 문제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설교를 무조건 은혜롭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성도에게는 말씀을 분별하여 들을 책임도 있습니다.

설교는 이해를 넘어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설교의 목적은 어려운 지식을 전달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며, 성도가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설교를 듣고 모든 내용을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조금 더 알게 되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다시 바라보며, 삶의 한 부분이라도 말씀에 순종하게 된다면 설교는 열매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설교가 이해되지 않을 때 자신만 탓하지 마십시오. 듣는 사람에게 준비가 필요하듯, 전하는 사람에게도 명료하고 충실하게 설명할 책임이 있습니다.

좋은 설교란 어려운 진리를 어렵게 말하는 설교가 아니라, 깊은 진리를 정직하고 분명하게 풀어 주는 설교입니다. 그리고 좋은 청중이란 모든 설교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을 펴고 들으며 질문하고 분별하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2026년 5월 넷째주 주일 대표기도문

2026년 3월 29일 셋째 주일 예배 대표기도문

2026년 3월 넷째 주일 예배 대표기도문